부산시는 Dynamic Busa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부산을 찾는 관광객을 맞이할 문화관광코스도 준비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노선. 코스는 해운대, 태종대, 역사문화탐방, 해동용궁사, 을숙도자연생태, 야경 순으로 짜여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 친숙해진 우리에게 이제는 인문학적 시간여행이 첨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알아가고 부산에만 공존하는 다양한 시간을 발견하는 재미도 만끽해야 하지 않을까.

  시간(時間)이란 때와 사이가 혼합된 개념으로서, 보편적으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포괄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학에서는 지속성을 규정하는 존재형식으로 시간 개념을 설명한다. 시간의 본질이 흐름이라는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철학에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듯이, 문화와 관광이 결합된 부산에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일한 도시라는 자긍심이 구축되기까지는 적지 않는 과정과 태도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를 지배하는 경제 원리와 정치논리는 한참 뒤처진 모양새를 띠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원인결과론이 아니라 부산의 문화현장에서 인문학적 시간 개념을 차곡차곡 다듬어보자.

  뜨거운 여름철 피서객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활처럼 길게 휘어진 해운대해수욕장. 광안대교와 민락동 회센터가 모여 있는 광안리해수욕장. 이러한 공간에서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여 시간을 인식하는 기준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시간이라고 규정되는 반면에, 조선통신사를 시작으로 1889년 세워진 자갈치시장, 한국 전쟁 후 피란민들의 애환과 삶이 녹아있는 국제시장과 굽이굽이 흐르는 산복도로는 시간을 인지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해수욕장과 삶의 공간이 공존하는 부산에는 시간의 흐름을 지각하는 척도도 다양하다. 시간을 인지한다는 것은 무엇이 시간에 일어났는가에 따르기 마련이다. 사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말하는 반면에,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공간에는 지루함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관조의 차이로 인하여 짧은 시간, 긴 시간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미학적으로 풀어보면 사람들은 종종 과거를 반추하여 시간을 평가한다. 사건이 많이 일어난 시기에는 많은 정보들이 저장되어 시간과 공간이 길게 나타나는 반면에, 사건이 비교적 적게 일어난 시기에는 그에 걸맞게 정보들도 적게 저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학의 선구자인 철학자 칸트는 우리에게 경험이 없이는 시간을 생각할 수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고, 하이데거는 여기에 한 발짝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를 깊숙이 각인시키는 현실적인 시간개념을 미학적으로 풀어내질 않았는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문화 선진국도 근현대화를 거쳤고,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연속성이 문화에 녹아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물리적인(경제) 크기와는 달리 인문학에서는 명백하게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이 시간이라고 말한다.

  서둘러 해명하면, 부산에는 조선시대(조선통신사), 일제강점기(자갈치시장), 한국전쟁(산복도로와 국제시장), 1970·80년대 현대화(아파트문화) 그리고 21세기를 상징하는 첨단 복합 산업단지 센텀시티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880년대 1950년대, 1970·80년대와 더불어 21세기라는 시간개념이 나란히 현존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는 부산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도시라는 든든한 자존감을 표방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시간개념이 다양하게 녹아있다는 사실, 나아가서 우리에게 시간을 이해하는 척도가 부재했고 그리하여 성찰하는 습관이 무한경쟁으로 억압되었다는 사실, 원인이 아니라 이러한 사실만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면 된다. 여름철 피서객 숫자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솔하고 진지하게 미학적 시간개념을 들려줄 시기가 성숙하질 않았나. 우리들 삶 속에 뿌리를 내린 지 오래된 문화현장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