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학교 - 열린미래 꿈이있는 대학

김정균
화학과 교수

  지루했던 장마를 지나며 물에 생각이 머문다. 물은 많은 화합물들이 가지는 일반적 성질과는 거리가 먼 '유별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물이 사전적 의미의 '보통성질'을 가지지 않았다면 자연계에서 생명체들의 존재는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물은 '유별남과 보통'이라는 두 이질성을 동시에 내포한 몇 안 되는 유별난 물질 (unusual matter) 중의 하나가 된다.

  물이 가지는 이 '유별남'을 데이비스는 그의 저서 과학의 거울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포괄적 의미의 위대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가능케 하는 성질"이라고 제안하였다. 이 유별나고 고마우신 어머니는 우리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우리를 9개월 동안이나 안아 키워준 위대한 감실이며 태어난 다음에도 우리를 여전히 당신의 품에 가두어 둔 욕심 많은 여인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살이는 그냥 물리적 과정으로만 표현한다면 살과 피부 안에 갇혀있는 물의 흐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생명체의 기본단위는 세포이며 세포는 물이 주성분인 유체로 채워져 있고 삶과 죽음이 이 유체의 흐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물의 이 유별난 성질은 그들이 가지는 화학결합에 바탕을 둔 물리적 성질에서 유래한다. 정리하면 물은 산소와 수소가 만나 그들이 가졌던 모든 에너지를 태워 소진하고 남은 재(ashes)와 같은 물질이다. 물이 불에 타지 않는 것도 물이 태워야할 에너지가 더 남아있지 않은 가난함에 원인이 있다. 물과 비슷한 분자량을 가진 메탄은 많은 에너지를 가진 부자물질이다. 이들의 풍요함은 서로가 서로의 필요성을 외면하는 외톨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물은 서로의 빈곳을 채워주며 손잡고 낮은 곳에 모인다. 이 유별남은 자연이 그들에게 준 선물이다. 이들이 서로를 잡아주던 끈을 잠시 놓쳐도 창공을 헤매다 다시 모여 구름 되고 비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비록 전체 담수에 비해 1%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이지만 이들의 귀환은 메마른 땅에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본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 온도에 따르는 변화 중에 일반적으로 물질은 고체의 경우가 액체보다 체적이 줄어 비중이 무거워 진다. 그러나 물은 고체인 얼음이 되면 액체인 물보다 가벼워지는 유별남을 가지고 있다. 겨울철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강이나 바다가 얼음으로 뒤덮여도 그 아래에는 물고기가 서식할 수 있는 생명의 공간을 제공해 주는 현상도 이 가벼워짐에 있다. 물의 크고 비어있는 에너지그릇은 태양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여 날씨와 기후를 서서히 변하게 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뿐 아니다. 물은 또 동물들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여지도 만들어 준다. 따라서 물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묘판(苗板)이며 영원한 생명의 고향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강이나 바다를 쳐다보며 느끼는 감정은 생명의 고향이 점차 줄어들고 오염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오염된 강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가장 흔하다 생각되던 물은 인구의 증가와 삶의 방식의 변화에 의해 이제는 흔하지 않은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시의 삶에서는 하루 동안 인간은 10~20리터의 물만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19세기에 기술이 발달한 유럽의 국가들에는 40~60리터의 물이 필요하였고 현재 문명국에서는 그 6배 이상의 물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기하급수적 증가를 담당할 시설의 확충은 아직 요원하다. 그로 인해 이 지구상에서 아직 물부족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전 인구의 30%에 달하며 어린이 200만 명이 매년 물과 관련한 문제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세계가 물 문제를 개발과 투자의 최우선 순위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2025년에는 물부족 사태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과 물은 항상 함수적 관계에 있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인위적 방법에 의한 개선 없이는 인간과 물의 연속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물의 유별남이 생각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