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 3명은 누구일까. 필자는 링컨, 트루먼, 닉슨을 꼽고 싶다.

링컨은 노예를 해방시켜 남북으로 분단됐던 미국을 진정한 합중국으로 만든 최초의 통합 대통령이다. 트루먼은 원자탄 두 방으로 일본을 굴복시키고 미국이 참전한 최초의 세계 대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닉슨은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중국을 밖으로 끌어냄으로써 동서 냉전 시대를 마감하고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

세 사람이 제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의미의 역사를 만들었지만 "새로운 판을 짰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우리 국민은 닉슨의 중국 방문과 비슷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적 여망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정황들도 한ㆍ중 관계 새판 짜기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북한의 도발에 중국의 피로감이 한계를 보이고 있고 국제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강대국 위상에 걸맞은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분명히 밝혔다. 과거 역사에서 되풀이되었던 배타적인 새판 짜기가 아니라 상생의 신형 대국 판짜기를 약속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태도도 판이해지고 있다. 우선순위가 한참 밀렸던 비핵화가 맨 앞자리에 올라왔다. 일부 학계 주장이긴 하지만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도 수용할 수 있다는 천지개벽할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긴 해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비핵화의 우선순위가 높아졌다 해도 북한에 대한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없다. 고개는 돌리지만 어깨는 돌릴 수 없는 게 중국이 보는 지정학적 현실이다. 중국이 비핵화를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 안정의 중요성이 덜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아직은 전략적 변화라기보다는 전술적 변용 측면이 강하다는 전제 아래 신중한 접근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바라는 것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북한을 포기한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통일이 바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는 엄청난 정치ㆍ사회적 혼란과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목표는 북한이 핵을 버리고 경제 발전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 우리의 남북정책이 만나는 지점이다. 북이 당장 핵을 폐기하지 않더라도 비핵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 표시와 일정 수준 성의 있는 행동이 있으면 북한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양국 정상이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박 대통령 방중에서 꼭 얻어내야 할 것은 바로 `상대방 마음을 얻는 일`이다. 정상의 마음뿐 아니라 중국 인민들 마음을 얻어야 한다. `세 척의 얼음이 쌓인 것도 하루아침의 추위 때문이 아니다(氷凍三尺 非一日之寒)`라는 중국 속담처럼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쉽지는 않다.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 사람들 호감이 높다 해도 양국 간 신뢰 쌓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번 방문은 두 정상이 서로 꿈을 설명하고 두 꿈이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니라 동몽이상(同夢異床)일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수교 이후 지난 21년 동안 한ㆍ중 관계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빠른 성장을 해온 것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실용주의 정신이었다. 이 정신에 입각해서 우선 같은 부분을 확인하고 넓히고, 또 다른 부분은 점차 줄여나가는 노력을 경주하자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 기구를 만드는 합의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중국을 상대하려면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이번 정상 방문이 서로의 미래와 꿈과 비전을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자리이기에 더욱 그렇다. 서로 긴 호흡으로 함께 갈 때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 맞는 새로운 판 짜기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