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 기고] 시징핑의 중국 어디로 가나 2012-11-21 오후 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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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진핑의 中國 어디로 가나

 

   
 

 

 
 
   
 

정종욱 국제학부 석좌교수

 
 베이징 심장부를 관통하는 창안(長安)대로 위에 중화스지탄(中華世紀壇)이라는 건물이 있다. 구리로 만든 긴 통로를 따라 가면서 발 밑에 새겨진 5000년 중국 역사를 읽고 나면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웅장한 조형물이 나타난다. 영광과 오욕이 점철된 지난 역사 위에 우뚝 솟아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꿈과 염원을 담아 세기가 바뀐 2001년에 세워졌다.

지난 15일 중국 공산당의 새 지도부가 출범했다. 5세대 지도부로서 2022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을 통치해 나간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시진핑의 취임사에 숨겨진 화두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었다. 10년 동안 경제를 2배로 늘려 2022년에는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이자 대국굴기(大國堀起)의 완성을 의미한다. 과연 가능할까?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구성된 새 지도부의 경력을 보면 시진핑 호가 정치 안정과 경제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부의 공평한 분배(共富)와 내륙과 연안지역 간의 공진(共進)을 강조하면서도 일부 지역의 앞선 발전(先進)이나 부의 축적(先富)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리커창과 류윈산을 제외하면 상무위원 7명 중 5명이 상하이, 톈진, 광둥, 푸젠 등 연안지역에서 오래 근무했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보수파들로서 정치 안정을 위해서는 강력한 힘의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 신(新)권위주의적 철학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산시성 푸핑에 있는 시진핑의 시골 집에는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포용한다’(厚德載物·후덕재물)는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시진핑 집권 초반 5년 동안은 덕치(德治)보다 패치(覇治)의 논리가 우세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 선출된 상무위원 7명 중 5명은 1940년대 후반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시진핑과 리커창을 빼면 모두 5년 후에는 물러나야 한다. 5년 후 상무위원이 될 후보들은 대부분 지금의 정치국원들이다. 이들 중에는 50대의 젊고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다. 공청단 계열 인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의 전·후기 정책이 상당히 다를 것임을 시사한다. 전기가 패치의 시기이고 후기가 덕치의 시기는 아니겠지만 후반보다 전반이 더 복잡하고 시끄러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중화민족의 부흥도 가능해질 수 있다.

시진핑 체제의 대외정책도 전기와 후기가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전기 동안에는 큰 변화의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전기 5년은 국내정치에 전념할 시기다. 자세를 낮추고 내공을 축적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연장선상에서 대외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크게 부딪치는 일은 일단 피해 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시진핑이 말한 신대국관계도 중국의 위상에 걸맞은 대우를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면 미·중 양국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평화로운 공존은 아니라 해도 싸우다가 판이 깨지는 일은 없을 것(鬪而不破·투이불파)이라는 암시였다.

물론 낙관할 수는 없다. 서로의 핵심 이익 영역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1995년의 대만해협 위기처럼 양안관계, 티베트 문제와 영토 문제 등을 둘러싼 대립이 심각한 긴장 고조로 이어질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국 정부가 국내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가 특히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은 미국·중국과의 양자관계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우리만의 독자적 공간을 꾸준히 넓혀 나가는 것이다. 다자적 협력 기구를 만들면서 남북관계에서 막힌 숨통을 터야 한다. 한반도에서 우리 입지가 넓어져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없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