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과 졸업, 40년간 독일에서 태권도 보급, 건강 서적 베스트셀러 작가… 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는 우리 대학교 법학과 57학번 서윤남 관장이다.

서 관장은 1967년 독일 바이에른 주의 경찰 초청으로 뮌헨에 터를 잡은 뒤 지난 40년간 타국에서 태권도 보급에 힘쓰며 수천 명의 제자를 양성했고, 독일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도 역임했다.

그가 우리 대학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10년 이영수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교환교수로 뮌헨대학교를 찾으면서부터다. 조국과 태권도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에 감동한 이 교수는 최근 그를 모교로 초청했으나, 고령의 나이인데다 시간을 내기 여의치 않아 아쉽게도 우리 대학을 방문하지는 못했다. 대신 아내 장세연 씨를 통해 모교에 기증할 책 6권과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저 멀리 지구반대편에서 날아온 그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본다.

 

- 우리 대학을 졸업하신지도 벌써 50여년이 흘렀습니다. 관장님께서는 갖고 계신 추억을 들려주세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11월 1일은 우리 대학의 생일이지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61년에는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관혼상제나 축제 같은 데에 돈을 절약하라는 정부방침이 있었습니다. 당시 정재환 총장님께서 “그래도 개교기념일인데 학생들에게 떡이라도 먹여야 하는데…”하며 난처해하셨다고 합니다. 배고픈 시절이라 떡은 영양가 높은 최고의 간식이었거든요.

그때 저를 포함한 10여명의 학생들이 개교기념일 행사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였는데, 행사가 마무리되고 마침 총장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던 찰라 저희가 도복을 입고 운동장에 들어섰습니다. 저희 공연을 다 보시고는 “그래도 태권도 시범을 보며 우리 학생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겠구만”하며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 그런데 관장님께서는 법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법학도께서 태권도를 가르친다, 선뜻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어떻게 운동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몸이 너무 약해서 홍역을 앓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지요. 실제 나이와 호적 나이의 차이도 그래서 생겼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더 씩씩하게 키우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어린나이에도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 평행봉을 만들어 놀았고 뒷산을 매일 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체구 때문에 또래 애들한테 맞고만 다니니 이것도 부모님의 걱정거리였습니다. 권투를 배워보라는 부모님의 조언에 권투도장 입구에서 여러 번 망설였지만 부끄럽고 두려워 다시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으로 차돌도 깨고 주먹으로 송판, 기왓장, 벽돌 등을 깨는 당수도라는 운동을 알게 됐고, 당수선생에게 개인지도를 받으며 지금의 태권도에 입문하게 된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일찍이 운동에 뜻을 두신 거군요. 그런데 어떻게 법학과를 택하게 되셨나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돼 가난한 농부의 살림살이로 저를 부산까지 유학 보내셨습니다. 부모님의 한 가지 희망은 내 아들이 면서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면서기가 되려면 법대가 맞을 것 같아 법학과로 진학했지요. 대학 졸업 후 군복무 3년 6개월을 마치고 귀향해 면장님께 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까지 졸업한 태권도 선수를 부하직원으로 두기 어렵다는 판단에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러던 1967년 독일 바이에른 주의 경찰 초청으로 뮌헨에 오게 된 것입니다.

돌아보면 오늘 날 제가 건강한 것도 대학을 다녔던 것도 부모님의 은덕입니다. 부모님의 소원처럼 건강을 챙겼고 비록 면서기는 되지 못했지만 해외에서 외국인을 지도하고 우리나라를 알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지금도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학생은 어느 정도인지요.

   네. 현재 태권도장 관원은 200명 정도인데 대부분 독일인입니다. 5,60세 심지어 70세가 넘는 분들도 계시고 이들 중 대부분이 독일 사회 지식인층입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도장에서 제일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더군요.

독일인들은 ‘대강, 빨리’라는 게 없고 한 가지라도 정확하게 꼼꼼한 성격이라(한국인 눈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운동시간에도 모두 열심이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대부분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먼 거리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나오시고 10년 20년 이상 나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 관장님께서는 태권도 이외에도 한국 건강법과 전통요리를 소개하는데 노력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태권도 기술만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저도 점점 나이가 들고 또 제가 여기서 살 수 있게 허락해준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고마움과 신세를 갚고자 건강 운동법 등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그 당시 독일의 일간지인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발행하는 ‘쥐트도이체 차이퉁 마가친’에서 근무하는 예술담당부장이 제게서 운동을 배우고 있었는데, 제 운동법이 마음에 든다며 인터뷰와 더불어 몇 가지 동작을 잡지에 실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싣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진작가, 기자 등이 찾아와서 엉겁결에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인터뷰와 사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길 가던 노인들도 쫓아와 ‘신문에서 봤는데 이렇게 하면 되냐’고 물었고 잡지사, 출판사, TV 등에서도 전화를 걸어와 자기네들과 인터뷰하자는 통에 걱정이 됐습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 마가친’에 연재를 싣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한두 번 연재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2년 동안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를 엮은 책이 ‘대나무를 굽히다’입니다. 이 책은 바람을 잘 타서인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때부터 더 계획적으로 건강관련 책을 읽고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서윤남 관장의 첫 번째 책 '대나무를 굽히다’에는 1998년부터 2년간 ‘쥐트도이체 차이퉁 마가친’에 23회 연재됐던 내용이 담겼다. 이 책은 독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2004년 ‘웃으면서 산을 오르다’, 2006년 ‘웃음은 마음을 열어준다’, 2008년 ‘100세? 문제없어요!’, 2009년 ‘행복을 여는 12개의 키’에 이어 2011년 ‘삶의 즐거움’까지 모두 6권의 독일어 책을 펴냈다. 최근 서윤남 관장은 이 6권의 책을 우리 대학에 기증했다                          

서윤남 관장의 책 Den Bambus biegen(대나무를 굽히다)의 표지

      

 - 그렇다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건강 비결은 무엇인가요.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즐거운 잔치가 있을 때 어깨춤을 추며 흥을 내던 민족이었습니다. 괴로움과 슬픔 속, 초상이 나서 상애를 내갈 때도 노래와 춤으로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며 생활의 활력을 재충전시켰습니다.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양종교에서는 대동소이하게 몸과 마음을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동시에 닦아야 하며 음과 양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유지하자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부단히 노력한 결과 종교와 건강법이 생겼고, 태권도 또한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수련하는 실전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쓴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고사, 속담, 격언, 명언 등을 의학적으로 접목시키고 음식, 운동, 정서, 웃음, 단전호흡 등을 더해 오장육부의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즉, 수련법을 통한 예방의학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혹은 뿌듯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1967년 저는 독일 바이에른 경찰 초청을 받아 뮌헨으로 오게 됐습니다. 제 고향 고흥을 떠나오던 날 고흥군청 정문 앞부터 고흥읍 시가지가 끝나는 곳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에 태극기를 들고 나와 저를 축하해주었습니다. “서윤남 만세”를 외치는 상기된 표정에는 이별이라는 아쉬움도 묻어났습니다. 아직도 고향 분들께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제가 독일에 온지 5년 후인 1972년에 뮌헨 하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저는 이경명 사범과 상의 끝에 올림픽 위원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이기 위해 계획을 짰습니다. 뮌헨주제한국영사관(임시)에서 500마르크를 지원하고 남은 경비는 저희가 부담하기로 합의를 하고 대한태권도협회와 대한체육회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대한태권도협회에서는 김운용 회장님의 특별지시로 원로 엄운규ㆍ이종수 관장님께서 참석하셨고 대한체육회에서는 김택수 대한체육회장, 이종택 대한체육회 사무총장님이 참석하셨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위원 20여명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독일을 비롯해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30여명의 사범들이 모여 시범단을 결성해 성공리에 공연을 끝마쳤습니다. 이 소식이 제 고향에까지 알려져 제가 ‘자랑스런 고흥군민’의 상을 받기도 했지요.

 

 - 태권도뿐만 아니라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 등 최근 세계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타국에서 한국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제가 처음 독일에 있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은 지금도 전쟁 중인지’ ‘얼마나 못살면 외국에까지 왔는지’ 등 또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별별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태권도 사범들은 누가 가르친 것도 교육받은 것도 아닌데 도장에서 운동을 시작하기 전과 운동이 끝난 후 제자들에게 차렷, 태극기에 대한 경례, 사범에 대한 경례를 가르쳤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바로 그들이 풀뿌리 외교관이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에 등록된 국가가 200국이 넘습니다. 누가 이 넓은 세계에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태권도 기술과 정신을 심어주었겠습니까. 자랑하고 싶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그만큼 국민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여름 8월 15일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갔습니다. 시카고 공항에 입국절차를 하는데 검사관께서 제 여권을 보고 기재한 다음 한국말로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라 “어떻게 한국말을 할 수 있느냐”했더니 “관심이 있어서 배웠습니다”라더군요. 얼마나 흐뭇하던지….

우리 국민의 교육열과 교육기관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 얻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장한 일이지요.

 

- 마지막으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모로부터 몸과 마음을 이어받습니다. 피는 온 몸을 순환하면서 온 몸에 생명을 공급합니다. 현대의학이 고도로 발달해 인공치아, 인공심장, 인공뼈, 인공피부 등 많은 신체기관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피만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도입해도 아직까지 만들어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존재입니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피와 마음을 이어받고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길러주신 높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동아의 피가 우리의 두뇌를 진보 발전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듯이 자기 전공과목을 부단한 노력으로 전문화시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모교를 위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창조적인 힘이 있으며, 긍정적인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동아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길 바랍니다.<정리 = 구보은 대외협력처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