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린 건지 올해 여름의 잦은 폭우는 거리에 나앉아 호구지책을 갈구하는 서민들에겐 독비［毒雨］와 다를 바 없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조차 불통인 전통시장의 노상에서 달려드는 파리를 쫓으며 좌판을 생명처럼 껴안고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땀에 젖은 모습은 삶의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필자 또한 까닭 없이 권태가 밀려오고 무료함에 머리가 휑해지고 온몸에 맥이 빠지기라도 하면 가까운 시장을 둘러보면서 기분을 전환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장은 생존의 수단과 방법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곳이다. 흔히 '저잣거리'라고 하는 시장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가장 기초적인 나눔과 상생의 틀을 갖춘 소통과 교류의 마당이었다. 그런 연유로 시장은 경작과 생산의 과정을 담보하는 유통의 질서를 구축시킨 하나의 성역으로 문명의 향도적 기능을 수행해 오면서 오늘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정착시킨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성스러운 삶의 텃밭인 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의 하이에나적인 무차별적 공격에 의해서다. 이들 대기업이 거대자본을 형성한 곳은 영세상인들이 주축이 된 시장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키워준 시장을 배신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장을 죽이려는 망동을 보이고 있다. 돈을 위해선 피와 눈물도 없는 게 대기업의 본색이라지만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도대체 시장을 죽여서 무엇을 얻고자 한단 말인가. 더욱이 시장은 수십 년을 도로 맨바닥에서 생존의 끈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서민들의 삶터가 아닌가. 주지하다시피 법을 빌미로 무분별하게 대형마트의 영업을 허용한 이후 전통시장은 몰라보게 위축되고 피폐해졌다. 그 전형이 롯데마트에 의한 부산 사상구 엄궁시장의 몰락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서민의 삶은 팍팍해졌고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5일 부산 북구청이 내린 구포시장 인근의 '덕천마트' 불허 결정은 비록 구포시장 상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자치단체가 서민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선거로 뽑는 단체장들이 입만 벙긋하면 서민을 위한 행정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들고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실효성을 유발하는 정책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 북구청의 대형마트 불허 결정이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 이유는 중소제조기업의 저승사자 노릇을 하는 대형마트의 확장은 유통질서를 왜곡시키고 서민들의 일터를 박탈함으로써 실업자를 양산시키며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급기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형마트의 전통시장 초토화는 사람냄새가 물씬거리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다움이 존재하는 공간을 없애는 인간성 말살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막아야 한다. 특히 최근 롯데그룹이 롯데백화점 광복점 옆에 대형마트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중구, 서구, 영도구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는 재벌의 영세상인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골목상권까지 씨를 말리려는 대기업의 전횡은 롯데뿐만이 아니다. 신세계 계열의 이마트는 한 술 더 떠 창고형 할인매장 트레이더스와 도매B2B(기업 간 거래) 온라인몰 이클럽을 통해 도매업까지 잠식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영세 도매상인에 속하는 전국의 음·식료품 납품업체 3만 9천여 개와 이에 따른 종사자 8만 5천 명의 밥줄이 위협을 받는 등 상상을 초월한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어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국민들의 삶과 날줄씨줄로 엮어져 있는 전통시장이 와해되는 건 국가경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어떻게든 대기업의 대형마트나 도매업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책을 세워야 하며 정부가 이를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 시장이 죽고 서민이 죽는 걸 방치하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