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북한이 중국의 발전 상황을 이해하고 활용"하리라는 기대도 오갔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직접 한 말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바이기도 하다.

중국의 개혁ㆍ개방은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순조롭게 뒤바꾼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사례다. 놀라운 장기 고도성장도 동반했다.

문제는 중국의 `모델`을 북한이 따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의 체제 전환은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으로의 리더십 교체에 의해 가능했다. 덩샤오핑이 제일 처음 한 일도 마오쩌둥과의 단절과 계승의 지점을 내외에 분명히 밝힌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과 사람이다. 중국이 개혁ㆍ개방을 시작한 1978년은 1949년 공산화로부터 채 3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계획경제였다기보다는 차라리 혼란의 시대였던 문화혁명 10년간(1966~1976년)을 제외하면 중국에서 시장 논리가 완전히 사라졌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즉 중국에서 계획경제는 한 세대도 지속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에는 개혁ㆍ개방 초기부터 시장경제의 경험을 충분히 기억하고 있는 관료, 전문가, 기업인, 농민 집단이 존재했다. 덩샤오핑은 개혁ㆍ개방을 통해 그들에게 안심하고 출발하라는 신호를 울려준 것뿐이다.

`메가트렌드`의 저자 존 나이스빗은 `메가트렌드 차이나(2010)`에서 개혁ㆍ개방의 성공에서 실사구시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했는가를 거듭 설명하고 있다. 지시나 이념이 아니라 `현실`과 `실천`을 근거로 사물을 판단한다는 논리가 대규모의 상향식 참여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개혁ㆍ개방 초기 중국은 실사구시를 내세워 시행착오를 장려하고 제도화했다. 이로써 13억 인민의 정신을 해방시키고 거기서 창의적인 실천을 이끌어냈다.

북한이 계획경제를 실시한 지 이미 두 세대가 지났다. 북한에서 시장이란 그저 `장마당` `외화벌이`일 뿐이다. 아래서는 이미 시장을 모른다. 개혁은 위에서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간헐적인 개혁 시도 끝에는 번번이 고위 관료의 총살 소식이 이어진다. 북한식 궁정정치 속에서는 시행착오도 창의적 실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공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최고지도자의 결단과 능력에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 김정일의 잦은 방중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당장은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역시 시장을 너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나 중국의 개혁ㆍ개방은 모두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에서 시작했다. 말이 좋아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이지 농촌에서 올라온 청소년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경제를 일으켰다. 경제가 가진 비교우위를 냉정하게 인정한 결과다.

김정일은 이번 방중기간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장춘의 제일자동차(FAW) 공장, 6세대 생산라인이 깔렸다는 LCD 공장, 첨단 소프트웨어 업체를 둘러보았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중관춘 방문은 2001년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지금 김정일이 보아야 할 것은 개혁ㆍ개방 30년의 승승장구 끝에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선두 기업들이 아니다. 두 세대 동안 세상에서 격리됐던 북한의 인력과 토지가 어떤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이 먼저다.

사실 그 현실을 인식하고 나면 답은 있다. 신의주에서 개성에 이르는 지역은 동북아시아에 형성된 세계 최대의 제조업 생산 네트워크 안에서도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토지와 노동력과 물류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자동차, IT,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니라 의류, 신발, 봉제, 가죽 공장을 세울 생각만 한다면 말이다. 

2011.  5. 30.  매일경제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