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관련 소위에서 부결됐다. 이로써 거대경제권과의 첫 FTA가 오는 7월 1일에 제대로 발효될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유럽의회는 이미 2월에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바 있다. 국내언론들은 부결 사태를 대체로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부결 사실과 야당의 반대 이유, 그리고 여당 내 반란자(?)에 대한 흥미 위주의 짧은 기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나마도 시선을 끌만한 몇몇 해프닝이 있었기에 이 정도라도 주목을 받았지만, 그런 얘깃거리에 상관없이 FTA 비준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하버드대 퍼트남 교수는 FTA를 포함한 국가 간 통상협상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양면적 게임이론'을 널리 유행시켰다. 그에 따르면 잠정적 합의를 위한 국가 간의 흥정보다 그 잠정적 합의안의 비준 여부를 두고 내부구성원들이 벌이는 국내의 협상이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협상 사안에 대해 국내에서 이견이 많아질수록 국가 간 협상력이 오히려 커지게 되고, 협상의 가능성은 줄어들더라도 협상타결 후에는 그 이득이 훨씬 커진다는 논리이다.

우리 사회에 FTA를 둘러싸고 많은 관심과 이견이 존재함을 감추지 말고 충분히 드러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비준 부결의 후유증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준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익집단 간에 큰 이견과 충돌이 있음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이 옳다. 작게 보아도 세 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는 협정문의 국문본 번역의 오류이다. 정확히 말하면 영문본과 불일치하는 조항이 많다는 것인데, 이것은 비준을 늦추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점이다. 당장 '원산지 지위'에 대한 조항부터 불일치한다.

FTA의 비관세 수출혜택은 'made in Korea' 제품에만 주어지기에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할 때 허용된 기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유럽의회가 통과시킨 영문본의 원산지 기준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완구류와 왁스류 등 최소 두 개의 산업군에서 발견됐다. 영문과 국문에 따라 내용이 서로 다른 협정문을 공부하면서 원산지 인증을 준비해야 하는 해당 산업의 제조업체들이 당연히 협정안 비준에 이견을 표시하였을 것이다.

둘째는 EU와의 FTA 발효 후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취약산업에 대한 보상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농축산가와 중소규모 유통업체, 화장품과 의료기기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한 정부지원책이 발표됐으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으며 또한 야당의 반발도 심하다.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정당들이 이 부분에서 크게 목소리를 높여 지적함이 타당하다.

셋째, 기존의 장벽을 없애면서까지 자유무역을 허용하고자 하는 협상 파트너인 EU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EU의 친환경에너지 관련 기술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시장진입을 위한 각종 까다로운 규제는 역외국가에게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당장 올해부터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납땜을 금지시켰고, 내년부터는 자동차 1km 주행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을 130g으로 제한하고 초과 차량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한다. 수출차량이 30만 대일 경우 기준초과 벌금은 무려 550억 원이다. 당장 올해 7월에 발효시키기 보다는 충분한 숙성기간이 필요하다는 비준 반대파의 주장은 이런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EU의 각종 규제를 숙지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대 유럽과의 FTA 비준을 둘러싸고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나쁜 영향을 우선적으로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다 효율적인 대비책에 대한 논쟁,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 조정에 대한 노력 등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향후 올바른 FTA 정책 수립에 있어 이번 비준안 부결의 사례는 하나의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1.  4. 18.  국제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