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포커스] 동북아 원자력 공동운명체 | | | | | | | | | | | | | | | | | | 
| 지만수
국제학부 교수 |
그는 유럽 공동체의 기원을 의외의 역사적 경험에서 찾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연합국들 사이에는 국가 단위를 초월한 전시 수송 및 병참 협력이 이루어졌다. 때로는 군 통수권도 통합되었다. 그 경험이 유럽통합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돌려서 생각하면 이는 한 나라의 범위와 틀을 넘어선 공동체와 연대를 구축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각국의 경제적 이익과 국내 정치 그리고 민족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긴급하고 중대한 공동의 위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누구도 주권의 영역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일본 대지진이 세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진과 해일 같은 자연재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지금 자연재해를 계기로 드러난 인류 문명의 무모함과 위험함에 새삼 충격을 받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연쇄폭발은 특히 원자력발전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 원전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온실가스의 저감이라는 새로운 명분 속에 한때 르네상스를 맞았던 원전 건설의 붐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 보인다.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에 관한 모든 기존의 상식과 전문가들의 장담이 하나 하나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꽤 오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원자력발전과 그 안전에 관한 한 우리가 사는 동북아는 하나의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이다. 이미 한국은 21기, 중국은 1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중국은 27기의 원전을 더 건설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사고 전까지 52기의 원전을 운영 중이었다. 앞으로도 10기가 넘는 원전을 지을 계획이다. 동북아는 세계에서 원전의 건설과 운영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한 곳이다.
그런데 원전은 대개 바닷가에 짓는다. 중국의 원전은 대부분 황해 바다를 두고 우리와 마주하는 중국의 동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둥성에도 여러 기를 새로 짓고 있다. 신의주 건너 단둥에도 원전이 들어선다. 50개가 넘는 일본 원전의 절반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면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TEPCO)은 동해에 접한 가시와자키에 7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이다. 이 회사는 이미 2002년에도 데이터 조작 스캔들로 국제적 물의를 빚었다. 지난 수년간 잦은 지진으로 7기 중 지금도 몇 기는 수리 중이다.
후쿠시마 사태를 보고도 이것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반도를 둘러싼 수많은 원전 중 하나만 문제를 일으켜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는 이 땅 전체가 오랫동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뀔 수 있다. 한국의 운명이 어느 중국 원자력 전문가의 위험성 분석과 어느 일본 사기업의 비용편익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이런 걱정을 `기우(杞憂)`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과연 이걸 기우로 치부할 수 있는가?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동북아 각국의 원자력 정책은 결코 일국(一國) 차원의 의사결정일 수 없다. 지금 당장 동북아에는 각국의 원자력발전 실태와 계획을 공동으로 파악하고 세 나라의 모든 국민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공동의 기구와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유지에 대한 공동의 결정과 집행을 위한 시스템도 고안되어야 한다. 우리와 후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것이 동북아의 장기적 통합을 앞당기는 초석이 될 것이냐를 논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너무 입바르고 한가한 얘기다. 2011. 3. 21. 매일경제신문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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