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자본』 완역에 부쳐

강신준(동아대학교 경제학과)

1986년 어느 날 한 금융기관의 조사부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출판사를 운영하던 친구로부터 퇴근하면서 잠깐 들러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퇴근길에 들른 출판사에서 나는 친구로부터 원고를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원고뭉치를 하나 건네받았다. 집에서 원고뭉치를 펼쳐든 나는 깜짝 놀랐다. 당시로서는 너무도 위험시되던 『자본』 제1권의 원고였던 것이다. 이후 이 원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본』번역본으로 출판되었고, 나는 이때의 인연으로 제2권과 제3권의 번역을 맡았다.

그것을 출판하던 당시 나는 이것이 내 진로를 대학으로 바꾸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이 책과 평생을 함께 할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1년 이 책을 강의할 사람을 찾던 동아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후 나는 20년이 넘도록 이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운명적인 행로였다.

어느 날 문득 나를 찾아와 운명이 되어버린 이 『자본』이란 책은 어떤 책인가?

1999년 9월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단연 1위로 손꼽힌 사람은 마르크스였고, 그 이유는 그의 주저인 『자본』의 영향력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2008년 봄 교수신문도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후 남한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을 조사하였는데 여기에서도 『자본』이 1위를 차지하였다.

도대체 『자본』은 왜 이렇게 중요한 책으로 손꼽히는가?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나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적어도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 책이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의 결함을 과학적으로 지적하고 있어서 그 결함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모든 쟁점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 있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결함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인데다 역사적으로 그 진실의 힘을 계속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에 발발한 세계대공황은 이 책의 바로 그런 힘을 다시 확인시켜준 사건이었고, 이는 세계적으로 마르크스 르네상스라는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자본』이 보여주고 있는 진실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본』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교환’에서 찾고 있다.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구조는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는 형태였고, 여기에서는 생산이 모든 경제의 내용을 결정지었다. 그리하여 개미와 베짱이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우화는 비웃음거리로 전락하였다. 아무도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교환이 양자를 연결하는 형태로 경제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에서는 교환이 경제문제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자본』의 첫 구절은 교환되는 부의 실체인 상품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교환이란 상대가 있어야 한다. 교환은 상대와의 관계, 즉 사회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처음 역사에 등장할 당시 사적 소유권을 자신의 핵심적인 이념으로 삼았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전제와 이념이 서로 충돌하는 모순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교환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전제로 하면서 사적인 이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와 사적 소유간의 모순이 가장 폭발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공황이다. 『자본』은 바로 이 모순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책이며 자본주의의 모순이 어떻게 극복될 것인지에 대한 대안도 함께 담고 있는 책이다. 『자본』이 제시하는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 즉 그것의 모순이 극복된 경제체제는 사적 소유가 사회적 관계와 일치하는 사회, 즉 사회적 소유가 일반화되는 사회이다.

『자본』이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중요한 책으로 손꼽히고 2008년 대공황의 발발 이후 적극적으로 재조명을 받는 이유는, 이 책이 바로 이런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사적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이 예측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이후 파산한 대기업(GM과 AIG 등)들이 대거 국유화되고, 미국에서 건국 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의료보험의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무상급식 바람이 자리를 잡은 것은 모두『자본』이 얘기했던 바로 그 자연사적 과정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들이다.

『자본』이 가지고 있는 진실의 힘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 진실로 향하는 길에 무슨 망설임이 필요하겠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자본』을 강의하는 학교가 다섯 손가락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동아대학교에서는 이 책과의 운명적 인연으로 필자가 『자본』강의를 20년 넘게 계속 운영하고 있다. 교양과정에서는 ‘우리들의 경제학’이, 전공과정에서는 ‘정치경제학’이 개설돼, 전자는 입문적인 내용으로 후자는 심화된 과학적 내용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김예슬 학생의 자퇴선언에서 지적되었듯이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들끓는 오늘의 세태에서, 아직 진실의 힘을 믿고자 하는 학생들은 필자의 강의실을 서슴없이 찾아주기 바란다. 아마 인류 최대의 지적 유산과 접하면서 대학의 참된 모습과 인생의 진정한 지침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약속드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