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성식
의과대학 의학과 교수 |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연 노동시간은 아직도 1900시간을 초과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서유럽국가의 평균 노동시간인 1500~1600시간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보다도 300여 시간 더 길다. 이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의미다.
장시간 노동은 여러 건강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업무 중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부터 뇌졸중과 관상동맥질환과 같은 심각한 질환을 증가시킬 수 있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함께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해 발행한 연구보고서에는 주당 55시간 이상의 노동이 뇌졸중과 관상동맥질환을 일으키는 것은 그 근거가 명확하다고 잠정 결론 내리고 있다.
또 우리 몸에는 생체시계가 있다. 이 생체시계는 약 24시간의 주기를 갖는다. 우리 몸의 체온, 혈압, 호르몬 분비, 신장의 노폐물 배출 기능 모두 24시간의 일주기 리듬을 따른다. 일주기 리듬이 교란되면 재해성 사고와 손상, 수면 장애, 우울증, 위장관 증상, 심혈관질환, 유방암과 같은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일주기 리듬의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대근무와 야간노동이다. 교대근무와 야간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질환에 잘 걸린다는 것 역시 명확하다. 우리 몸 안의 생체리듬을 고려한다면, 유연한 노동 시간제와 건강은 양립하기 거의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주일 동안 주당 100시간 일하고 다음 일주일은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 것은 건강과 양립하기 힘들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몸은 매일매일 적당한 노동과 적절한 휴식과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하기 시작한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는 어찌 되었든 장시간 노동의 악영향을 사회가 인지하고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에 대한 정책은 노동자 건강의 측면에서는 명백한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근로기준법상 주당 노동시간은 40시간이고, 52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경우도 제한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필자는 경제문제 전문가가 아니어서 52시간 노동상한제의 경제적 영향은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 노동은 건강을 해친다는 건 명확하기에 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은 과로사와 정신건강, 수면 장애를 비롯한 여러 건강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명확히 반대한다. 안전과 건강을 위해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야간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또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아니라, 하루 허용 최대 노동시간을 정하고 업무 사이의 충분한 휴식과 수면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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