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인문학 칼럼]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된 램지어 망언 - 홍순권 사학과 교수 2021-03-25 오전 10: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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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인문학 칼럼]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된 램지어 망언
- 홍순권 사학과 교수

 

 
   
 
 

홍순권
사학과 교수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 계약’이 하버드대학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국제법경제리뷰’에 실린다는 소식이 국내에 알려져 큰 충격을 준 지 벌써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하버드대 로스쿨 한인학생회를 필두로 램지어 교수에 대한 대내외적 비난이 줄을 이었고, 그 논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과 함께 이 논문을 싣기로 한 학술지 편집자에게 논문 게재를 취소해달라는 청원이 미국을 비롯하여 국내외 학계 안팎에서 계속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 해당 학술지 편집자들도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여 게재 여부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고, 램지어 교수도 이러한 학계의 항의에 대해 자신 논문의 일부 오류를 인정하였지만, 논문의 완전한 취소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램지어의 논문에 대한 비판에는 미국 내 많은 교수들이 동참하고 있고 점차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어가는 추세이다. 특히 램지어의 논문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비판 성명서 서명운동에는 비단 역사학뿐만 아니라 법학, 경제학계의 저명한 학자들과 교수들이 동참하고 있다.

  램지어의 논문이 이처럼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그가 일본의 전쟁 범죄인 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역사를 왜곡 부정했다는 사실에 더해서 망언이나 다름없는 주장을 과학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램지어의 논문이 지닌 위험성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 학계에서 발표된 성명서에서도 학술적 관점에서 램지어의 논문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그의 논문이 증거가 없는 역사적 주장을 하기 위해 경제학의 이론과 경제학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2명(폴 밀그럼과 앨빈 로스)이 램지어 논문의 비판에 앞장선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란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하는 것이고 역사학 또한 사실을 근거로 하는 학문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역사가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것도 그 연구 대상이 과거에 실재했던 사실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 연구는 과학이 아닐뿐더러 학문으로도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한 점에서 ‘사실’은 역사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램지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기보다는 경제학적 방법론을 앞세워 접근하고 있다. 아무래도 경제학은 이론을 중시하는 학문이다 보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사실관계의 분석을 중시하는 역사학보다 경제학 이론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역사는 과학이면서 인문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근대적 세계관과 인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이러한 역사적 성찰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과학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도덕도 역사적 성찰을 통해서 진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란 과학인가 도덕인가란 질문을 던진 이유이기도 하다. 램지어의 주장이나 일본의 자유주의사관,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국내 일부 극우 인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역사수정주의의 공통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한일 양국 간 민족주의적 갈등으로 야기된 정치적 문제로 보는 데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군이 군위안소에서 행한 반인륜적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사실상 눈을 감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은 과학적 분석을 통한 학문적 연구 결과라기보다는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편향적 견해에 가깝다.

  21세기에 이르러서까지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한일 양국 간의 정치적 갈등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야기된 20세기 동아시아의 모순 구조로부터 생성된 청산되어야 할 과거사 문제이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말하는 ‘반일종족주의’ 운운하는 주장 또한 이러한 역사적 모순 구조를 직시하지 못했거나 외면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에서는 과거 전쟁 범죄에 대한 성찰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고 있음이 확인될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특히 과거를 성찰하지 않는 역사는 비극적으로 반복된다.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부 쿠데타의 비극처럼. 20세기 한국의 군부독재나 21세기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모두 본질적으로는 군국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거사를 성찰하지 않는 역사수정주의는 하루 속히 청산되어야 할 인류의 도덕적 퇴보임을 램지어의 논문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2021.3.24.(수) 국제신문 오피니언 19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