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jpg) | 김재현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흔히들 ‘천년고도 경주’ 라고 말한다. 그 만큼 오랜 세월 신라의 중심지다 보니, 지금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문화유산이 종종 발견된다. 인골의 발굴 또한 그런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인골이 죽은 자를 묻은 무덤에서 나오지만 예상 밖의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발견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에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수장고와 전시관을 확장하기 위한 발굴이 있었다. 본래 박물관 위치가 신라의 동궁이 있던 자리였다 보니 당시 건물의 흔적이 확인되는 것은 예상되던 일이었다. 그 중 궁궐 담벼락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 우물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너비가 1m 내외로 좁은 입구지만 깊이는 12m나 되는 이 우물의 바닥에서 인골이 나왔기 때문이다. 확인을 위해 안전모 하나만을 쓰고 우물 벽을 짚으며 내려가니 8m 정도에서 돌 벽은 끝이 나고 미끄러운 암반과 질척이는 진흙 사이에서 뼈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돌 벽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무서움도 잠시, 뼈로 옮겨진 나의 관심은 그것들이 사람의 발가락뼈임을 확인했다. 다른 뼈는 다 어디가고 발가락뼈만 남았는가를 의아해 하던 중 그 아래를 더듬어 보자 발가락 뼈 밑에 다리뼈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제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내려진 양동이에 진흙을 손으로 더듬어 퍼 올리길 얼마간, 인골의 모습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한 마디로 우물 바닥에 거꾸로 박힌 모습으로 말이다. 두개골보다 더 아래에 오른손의 뼈들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는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서 팔을 앞으로 내 뻗은 결과였다. 죽었거나 실신한 사람을 던졌다면 두개골이 먼저 바닥에 닿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8세 전후의 어린이로 밝혀진 이 인골은 우물 안으로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살아 있었다, 최후까지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떨어져 앞머리 오른쪽이 부딪혀 사망한 것이었다.
궁궐 안 우물가에서 일어난 사고였을까. 사고사였다면 죽은 어린이를 우물에 그대로 방치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처음 우물이 발견됐을 때는 우물 바닥서 높이 4m 까지 둥근 돌들로 내부가 메워진 상태였고, 인골이 발견된 곳 주위에는 신라토기와 함께 소 뼈도 통째로 발견된 것을 보아 사고가 아닌 어린이를 희생한 의례로 보였다. 우물서 발견된 인골은 이것만이 아니다. 2015년 노서동서 발견된 신라의 우물에선 20대 여성 두개골이 확인됐다. 처음부터 머리만 우물 안에 던진 것이다. 신라 사람 생활 유적이었던 이곳 우물에 왜 젊은 여자의 머리가 있는 것인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성의 머리만을 넣고 우물을 메워 버린 것일까. 또 같은 해 발굴한 월지 3호 우물은 황룡사지 가까이 위치한 유적인데 우물 안에서 고려시대의 유물과 함께 인골이 나왔다. 인골은 30대 후반의 남자 한명과 생후 6개월의 아기, 3세의 유아, 그리고 7~8세의 어린이 이렇게 4개체였다. 앞선 동궁지와는 반대로 두개골은 우물의 입구를 향하는 형태였다. 이들은 왜 우물 안에 있었던 것인가. 왜 우물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들이 우물 안에서 마지막 본 것은 혹시 불타고 있는 황룡사는 아니었을까.
우물은 아니지만 뜻밖의 인골 발견은 월성 A지구 성문지에서도 확인된다(국제신문 2017년 5월 16일 자 보도). 신라궁궐인 월성의 서쪽 성문지 아래에서 인골이 나온 것이다. 인골은 2개체로 모두 몸을 곧게 편 자세로 나란히 묻혔고 머리는 성문을 향하고 있었다. 성문을 만들기 위해 흙을 시루떡처럼 겹겹이 다지는 과정에서 이들 인골의 매장도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람을 기둥이나 주춧돌 아래 묻어서 제방이나 건물의 무너짐을 예방했다는 인주(人柱)설화를 보여 주듯이 말이다. 묻힌 장소도 그렇지만, 두 인골에서 확인되는 사실도 흥미롭다. 둘 모두 50대이지만 성별은 각각 남녀로, 남성은 이 시기 신라에선 드문 성인식 의례의 발치(拔齒)를 하였고 여성은 정면을 향하는 남성과 달리 마치 남성을 바라보듯 오른쪽으로 머리와 몸을 돌려 남성을 향한 채 묻혀 있었다. 또 둘 다 나무 관이 아닌 얇은 나무껍질로 얼굴과 몸을 감싸고 있었고, 다리부분은 동물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신고 있었다. 남자의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서는 복숭아씨가 나왔으며 여자의 갈비뼈 부근에서는 점치는 뼈인 복골(卜骨)도 함께 나왔다. 어쩌면 이들은 신라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도 시대의 희생물이었다. 우물 속에서 확인된 사람들, 그리고 성문 아래에 묻힌 남녀, 자의든 타의든 이들의 희생을 통해 신라 사람은 무엇을 소원하였을까
2020년 올해는 여러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 아픈 희생이 요구된 한 해였다. 옛날과 같은 형태의 희생은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새해는 그 희생들이 희망으로 승화되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평범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