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인문학 칼럼] 3·1운동 100주년의 한 해를 보내며 - 홍순권 사학과 교수 2019-12-20 오전 9: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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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인문학 칼럼] 3·1운동 100주년의 한 해를 보내며
- 홍순권 사학과 교수

 

 
   
 
 

홍순권
사학과 교수

항일운동 활발했던 부산, 독립운동정신 계승 소홀
기념관 만드는 창원처럼 다양한 방법들 고민해야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한국의 근대민족운동사적 견지에서 보면 올해는 3·1운동 100년을 맞은, 그래서 좀 더 특별한 한 해였다. 우리 근대 역사에서 3·1운동이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언필칭 일제 식민통치 아래에서 일어난 거족적 독립운동이었다는 사실 때문일 뿐 아니라,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는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또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3·1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 차원을 넘어 주권재민 원칙을 확인한 민족사적으로 일대 변혁 사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3·1운동을 3·1혁명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 안팎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의 ‘민주투쟁선언문’에서도 ‘3·1운동의 정신’이 언급된 것만 보아도, 3·1운동에 내재된 민주적 자주정신이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3·1운동의 역사적 무게만큼이나 올해는 그 정신을 기리는 많은 기념행사가 열렸다. 서울은 물론 각 지역에서도 많은 학술행사가 열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의 역사성과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많은 연구 성과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전국적 통계 분석이나 개별 인물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던 종래 연구 경향과는 달리 각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과 이후 독립운동사에 미친 영향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아울러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과 연구열이 높아진 것도 100주년 기념을 전후해서 일어난 새롭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공훈 심사에 여론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올해 특별히 주목받은 인물은 단연코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창설자였던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이었다. 영화 ‘밀정’ ‘암살’ 등을 통해 이미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김원봉은 병합 직후인 1916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45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중국에서 민족 독립을 위해 온 힘을 쏟다가 그해 12월 임정 요인 자격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친일파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던 그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월북한 이후 그대로 북한에 눌러앉고 말았다. 그는 북한 정권에 참여하여 국가검열상 등 고위직을 지냈으나 1958년께 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봉의 처로 그와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항일전장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1944년 5월 사망한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차정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현재 그의 동래 생가는 국가보훈처의 현충시설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이에 비해 김원봉은 해방 이후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그가 이룩한 높은 공적을 인정하여 독립유공자로 포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비록 문제 제기에 그쳤지만, 김원봉의 서훈을 둘러싼 문제는 우리 민족의 분단 현실과 독립운동 역사 간 괴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소홀히 다뤄왔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각 지역 차원에서도 추진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29일 경남 창원에서는 창원시가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향후 일제강점기 창원지역 독립운동에 대한 기념사업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그 실천 방안의 하나로 가칭 ‘창원시 독립운동기념관’의 설립을 의제로 올렸다. 이미 경북 안동에는 2007년 개관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개관 당시의 명칭은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있고, 전국 각지에 이름을 달리하는 기념관이 여럿 있다. 부산은 일제강점기 다른 어느 곳보다 항일민족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지역이고, 어느 지역 못지않게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그러다 보니 창원에서 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그냥 남의 일이라고 흘려 넘기기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없지 않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에 이어 공교롭게도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부산은 다른 어느 때보다 기념행사 준비로 숨 가쁜 한 해를 보냈다.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것은 그 사건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적 가치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3·1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의 정신과 가치를 어떻게 계승하고 활용해 나아갈 것인가는 앞으로도 우리 세대가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2019.12.18.(수) 국제신문 오피니언 31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