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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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한 비핵화·탈원전 등도 지소미아처럼 길 다시 찾아야
도약이냐 도태냐 갈림길에서 리더십의 7가지 덕목이 요구돼
시대 읽는 통찰력과 통합의 리더십 보이면 재도약 가능해 일방통행 길인 줄 모르고 잘못 들어섰다. 앞차가 나타났다. 운전자가 화를 낸다. 방법 하나. 잘못을 인정하고 차를 뒤로 물린다. 방법 둘. 후진하기에는 너무 들어왔으니 좀 비켜달라고 우긴다. 두 방법 중에는 그래도 앞의 행동이 낫다. 뒤의 행동은 당장은 모면할지 몰라도 더 가다가는 사고가 나거나 오도 가도 못하는 수렁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일방통행 길로 들어가지 않은 것보다 나을 수는 없다. 지소미아 문제가 딱 그렇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과잉조치이자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지소미아를 대응카드로 낼 일은 아니었다. 일본 걷어차려다 미국 걷어찬 꼴이고, 잘못 차면 내 발만 부러질 카드였기 때문이다. 들어서지 말아야 할 길을 들어섰지만 막판에 물러선 것은 잘한 일이다. 국익을 팽개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이처럼 일방통행 길로 들어갔다 낭패를 보고 있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비핵화, 탈원전, 부동산,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등등. 다 의도는 거창했으나 결과가 비뚤어진 것들이다. 지소미아처럼 지금이라도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았다면 길을 다시 찾아 나서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이제 성과가 나올 것이니 기다리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역주행 길로 더 들어서는 것은 아닐까.
시행착오를 더할 여유가 없는 이유는 지금이 누가 봐도 복합적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디지털 혁명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 신냉전체제와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세계질서의 전환, 비관적인 북한의 비핵화와 기로에 있는 남북 관계, 장기침체의 우려가 깊어지는 경제 등 안팎의 모든 분야가 도약이냐 도태냐의 갈림길을 보여주고 있다. 위기를 동반하는 전환기의 리더십은 평시의 리더십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평시에는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넘어간다. 그러나 전환기에는 리더십의 역량에 따라 꽃길로 나갈 수도 있고, 가시밭길에 빠질 수도 있다. 이 전환기에 특별히 요구되는 리더십의 일곱 가지 덕목들이 있다.
첫째, 시대를 읽는 통찰력, 즉 생각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이 전환기의 본질, 경향, 핵심고리를 찾아내 국정의 우선순위를 짜고 그 비전이 국민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외교 경제 민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젠다와 가장 시급한 어젠다를 명료하게 설정해야 한다.
둘째, 선두에서 이끌어야 한다. 핵심 과제와 전략을 국민에게 과하다 싶을 만큼 충분히 설명하고 이를 구현하는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프랑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개혁을 핵심 의제로 설정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전국을 다니며 집요하게 토론하고 설득했다. 결국은 엄청난 반발을 딛고 개혁을 이뤄냈고 경제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셋째,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필요한 일을 제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데이터 3법처럼 인공지능혁명 경쟁에서 핵심이 되는 규제 개혁 입법의 시간을 놓치면 ‘녹은 아이스크림’이 될 수밖에 없다.
넷째,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현장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알 수 없는 풍부하고 살아 있는 지식이 넘친다. 지난 2년 온갖 규제책을 남발했음에도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그 부작용으로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 자신 있다’는 말이 얼마나 실소를 자아내는지 현장에 가보면 안다.
다섯째,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탁월한 선택이 필요한 시기일수록 탁월한 인재를 써야 한다. 도그마에 사로잡힌 사람들보다는 실용적 해결책을 찾아내는 인재들, 의도보다 성과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중용해야 한다. 그들에게 과감하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다가오는 개각에서 보고 싶은 일이다.
여섯째, 수비를 먼저 튼튼히 해야 한다. 바둑에도 ‘내가 살고 난 후 잡으러 간다’는 격언이 있다. 전쟁에 대비하고 평화가 이루어지면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평화를 가정했는데 전쟁 위협이 증대되면 그것은 재앙이다. 북한의 핵무기국가화와 신무기체계 완성이 눈앞에 있는데 우리는 한·미 연합훈련도 무력화되고 방어체계에도 구멍이 뚫린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인 안전이 의심받게 된다. 그러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통합의 리더십이다. IMF 위기의 금모으기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일자리 나누기도 통합을 앞세웠기에 가능했다. 지금이라도 비상한 상황임을 선언하고 취임사에서 약속한 협치와 통합의 리더십을 실천해야 한다.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처럼 전환기의 핵심과제도 아니고 정쟁만 심화시킬 일을 강행하면 정국 파행이 불 보듯 뻔하고 협치도 통합도 물 건너간다. 정권이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면 물론 야당도 협력해야 한다. 국민은 이 큰 전환기에 대한민국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리더십이 발휘되고 여야가 협력하는 장면에 언제든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