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에 온 손녀들과 음악을 들었다. 그것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였다. 음악이라면 슈베르트라든가 쇼팽을 생각하는 나는 처음엔 그들을 위해 슈베르트의 연가곡을 틀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아이들은 사라지고 없었고, 이제 중년에 접어든 사위도 급한 일이 있다면서 다락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재미있는 것은 나의 딸도 BTS가 좋으니 그들의 노래를 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가사를 자세히 들어 보세요. 인터넷에 치면 가사가 다 나와요. 시 같아요. 뮤직비디오도 정말 멋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찍었는지….” 딸은 최근 BTS의 새 앨범에 수록되었다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흥얼거린다.
BTS 인기와 호소력 근원은 무엇일까
떼창과 군무, 축제성, 치유는 아닐지
근대 이후 사라진 우리 ‘전통’ 떠올라
서양적인 것 우월하다는 생각도 반성
아무튼 BTS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뉴스를 하루걸러 들으면서, 그 소년들이 노래를 잘할 뿐 아니라 호소력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다. 그러자 ‘신명’ 또는 ‘흥’이라는 단어가 우선 떠오른다. 그 소년들 노래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외국 관객이 BTS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라는 우리나라 기자의 질문에 대해 ‘열정’이라고 답하는 장면도 떠올랐다. 열정은 ‘신명’의 다른 말이 아닌가! 우리나라 말도 모르면서 열정이라니…. 그것은 축제성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축제성이 시작되는 시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향가에까지 닿아 있는 것 같다. 유난히 춤이 강조된
<삼국유사> 권2 ‘처용랑조’를 보자. ‘처용가’는 아마도 처용이 잔치를 끝낸 뒤, 요즘 말로 하자면 파티에서 돌아오면서, 흥에 겨워 춤추며 부르던 노래는 아니었을까. 처용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라비아 상인이었다는 속설도 있는 그들의 노래 중 어떤 이유로인가 해서 한 곡이 남아 전해지고 있는 것이리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판소리와 무가(巫歌)도 생각해 보자. 판소리의 경우, 그것이 당대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면 무가는 바로 당시의 사건들과 감정 그리고 희망의 경향 등을 담고 있다. 무녀는 마을의 집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치료 아닌 치료, 즉 상담과 치료를 한다. 따라서 그들의 주문(呪文)은 치료제인 셈이었다.
다시 말하면 BTS 노래의 축제성은 여럿이 부르면서 이루는 군가성(群歌性), 군무성(群舞性)이라는 속성과 함께 ‘나’를 향한 긍정성이 담겨 있다. 특히 최근 발매된 앨범의 경우 팬에의 헌정성이 짙은(특히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경우) 가사는, 여럿이 함께 노래할 뿐 아니라 이것에 춤을 곁들인다는 무가 사설의 힐링 모습도 지니고 있다. 외국의 어떤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BTS 노래에 자폐아도 치료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힐링은 그들 노래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 서양음악이 유입되면서 가무성 군가성 축제성 치유성이라는 우리 노래의 특징을 잃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은 확연히 다른 장르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일인(一人) 연주가 하나의 음악-특히 성악-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가만히 서서 부르는 독창은 우리 노래의 특징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분방함을 잃게 한 것이다. 여러 다른 이유를 들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앞에 언급한 우리 가무의 특징인 군가성 군무성 축제성 나아가 이들에서 배태된 자유분방함은 일인의 연주 형식, 가무가 분리된 노래, 말하자면 서양 노래의 영향을 듬뿍 받아 민중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성악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음악 공부를 하지 않은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하기 힘든, 레퍼토리도 가곡이라든가 외국 클래식에 한정된 고급음악 말이다.
이제 BTS의 노래가 서양 대중 노래라고만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식민지 시절 이후 우리 자신을 너무 홀대하고 있다. 서양적인 것이 우월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생각된다. 우리 스스로 그 부정적인 점을 이미지화해서 우리 자신을 계속 세뇌해 가고 있다고나 할는지.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 그것이 우리를 세계적으로 알릴 것이다. 왜?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은 열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진정성은 가장 자기다운 열정이다. 그 소년들의 노래엔 진정성과 그것의 다른 이름인 열정의 힘이 절규 아닌 절규를 세계 특히 서양을 향하여 쏟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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