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세상읽기] 둥근 달 하나, 천 개의 달 그림자 - 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2019-02-13 오후 12: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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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세상읽기] 둥근 달 하나, 천 개의 달 그림자
- 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속물적인 시각일 수도 있으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무엇일까. 언뜻 다빈치 고흐 피카소 같은 화가가 그린 서양 명화를 떠올릴 수 있다. 이름값이 그림의 무게를 더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를 알 수 없는 혹은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라도 과연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작품의 민낯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단연 고려불화를 빼놓을 수 없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점 이상이 남아 있다. 7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어도 지금껏 생명력을 품고 있다. 혹한에도 푸르름을 간직하는 세한송백처럼 보는 이들을 감탄케 한다. 푸르름을 잃지 않는 불화라면 단연 근엄하되 자애로운 모습의 관음보살 그림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둥근 달빛 아래 해수면 가운데 우뚝 솟은 암굴을 배경으로 바위에 앉아 한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어두운 밤하늘 둥근 달(月) 하나, 지상의 천 개의 강(千江) 위로 비친 달 그림자 천 개,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조선 세종대왕의 왕명으로 그의 둘째아들 수양대군이 돌아가신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가모니의 가계와 일대기를 기록한 ‘석보상절’을 지어 올렸다. 이에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모니의 공덕을 기리며 노래를 지었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다.

   밤하늘에 뜬 둥근 달 하나, 천 개의 강물 위에 비친 천 개의 달 그림자,‘월인천강’이 의미하는 바는 달은 부처의 본체인 진신을 말하고, 천 개의 강에 비친 천 개의 달 그림자는 부처의 화신을 뜻한다. 하나의 달이 모든 강물 위에 비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처의 가르침이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그들의 마음에 깃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둥근 달빛 아래 해수면이나 물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관음 그림은 대개 수월관음보살도라 일컫기도 한다. 암굴을 배경으로 바위의 풀방석에 앉아 인간 세상의 온갖 번뇌의 소리를 귀 기울여주는 자비로운 모습의 관음도는 아미타와 지장보살 그림과 함께 고려불화를 대표한다. 그래서인지 바위에 앉은 관음의 모습은 화면 전체를 꽉 채울 정도로 크게 부각시켜 표현했다. 게다가 관음보살의 머리에서부터 전신을 감싸며 흘러내린 투명한 베일자락은 관음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관음의 발언저리 물가에 장식된 연봉오리, 금빛 모래를 비롯해 홍산호, 백산호, 각종 보화, 공양화 등은 마치 관음토피아를 연상케 한다.

   관음의 발언저리 건너편 육지에는 관음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작은 아이를 그렸다. 선재동자다. 고려 수월관음도는 관음과 선재동자로 구성된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 구성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그 내용은 선재동자가 54인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남방을 향해 두루 방문, 보살도를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중 유독 제28번째에 방문한 성인이 관음보살이며, 그의 진신처의 방문 광경을 화폭에 담은 그림이 고려 수월관음도이다. 바로 둥근 하나의 달을 대한 것이다.

   고려 수월관음도는 몇몇 작품에 설화 내용을 살짝 첨가한 경우도 있다. ‘관음과 선재’로 이뤄진 도상에서 스토리텔링 장면을 화면에 끌어들여 변화를 주고 있다. 그것은 화면 아래쪽 귀퉁이에 배, 번개, 호랑이, 독사, 짐 보따리, 불타는 가옥 등을 아주 작게 그려 넣은 것이다. ‘법화경’ 보문품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즉, 중생이 뱃길에 풍랑을 만났을 때, 길을 가다 번개나 맹수를 만났을 때, 도적을 만났을 때 등을 그린 것이다. 이처럼 중생이 재난에 직면했을 때 관음의 명호를 외치면, 그 외침을 들은 관음이 중생을 구제해준다는 것이다. 비록 화면 전체 크기에 비해 극히 보조 장면으로 살짝 첨가됐으나 현실세계의 중생들의 고통을 쉽게 표현한 장면인 것이다. 천 개의 강에 달 그림자가 비추듯 관음이 이들의 외침에 응해 구제해준다는 것이다.

  마침 고려불화를 한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대고려918·2018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이 내달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아마도 10~20년 만에 오는 기회다. 고려불화를 보며 새봄을 맞이하면 어떨까 싶다.

 

[2019.02.13.(수) 국제신문 오피니언 26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