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일보/부일시론] 부산, ‘인권경영’의 새해를 열자 -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1-08 오전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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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부일시론] 부산, ‘인권경영’의 새해를 열자
-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연말 추운 겨울날 아침 부산도시철도 2호선 전포역 지하도에서 열린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신고센터 ‘뚜벅뚜벅’ 개소식에 참석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잊혔던 사건의 해결을 위해 지난 수년간 힘든 투쟁을 해 온 피해자와 유가족, 그동안 이들을 후원하고 지지해주었던 지역의 인권운동가와 더불어 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시의원들까지 함께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특히 검사 시절 당시 원장을 업무상횡령과 특수감금죄로 기소했고, 지금도 특별법 제정 운동을 후원하는 변호사도 참석해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것은 오랜 시간 남모를 고통을 견뎌낸 피해자 당사자들의 얼굴에 묻어 있던 좌절과 절망이었고,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미한 희망의 옅은 미소였다.

   ‘형제복지원’ 같은 곳이 이 땅 위에서 모두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무지막지한 인권 유린의 유형적인 시설물은 우리의 눈앞에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편견과 차별로 인해 고통받고 신음하는 많은 국민이 존재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는 학교 그 자체가 거대한 ‘감금시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직도 우리 사회의 각 생활 영역에서는 인권의 뿌리내림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곳곳의 편견과 차별 여전
더디게 진행되는 인권 뿌리내림

기업의 인권 침해 새롭게 부각
갈수록 강조되는 ‘인권경영’

시 산하 공기업 인권 결의 채택
첫걸음 내디딘 ‘인권도시 부산’

 
  종래 인권 침해의 주체는 주로 국가나 권력기관이었다. ‘형제복지원’ 사건도 사실은 국가가 내무부 훈령을 통해 전국적으로 진행한 대대적인 부랑자 단속의 어두운 그늘이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침해하는 주체로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업’이다. 지난 1970~80년대 인권 문제의 시발점이 된 노동인권의 보장 문제는 기업 내부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 영역은 기업 안팎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며 이미 그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갑질’ 사태는 기업 내 인권의식의 부재가 사회로 돌출된 것이었다. 포스코의 인도 일관제철소 건립 과정에서 나타난 원주민 인권과 환경 침해 논란은 국제적으로도 기업의 인권 존중 의지가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지켜보게 했다. 이제 외국 투자자들도 국내 기업의 실적만을 보지 않고 그 기업의 인권 옹호 의지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 바람에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되어 버린 국내 대기업들에게 해결해야 할 인권 문제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기업은 지구촌 곳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래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권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05년 유엔은 미국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존 러기 교수를 특별대표로 임명하여 ‘인권경영’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케 하였다. 6년간의 광범위한 작업을 통해 2011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이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차례의 연례포럼을 유엔 제네바 사무국에서 열고, 각국의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 수립을 권고한 바 있다. 법무부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내에 ‘기업과 인권’의 장을 마련하고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을 강조했다.

   이제 그러한 울림이 부산에까지 도달했다. 부산시는 지난 연말 산하 28개 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 대표와 함께 ‘인권경영 결의문’을 채택했다. 영남권 최초로 ‘인권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부산시 인권조례도 개정하면서 인권친화형 도시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지금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새해에는 분명 인권경영의 큰 물결이 부산을 뒤덮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구실 책상 위에는 센터 개소식 때 받은 양초가 놓여 있다. 수용번호만 기재되어 있고 그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미확인 희생자임을 알리는 초는 거친 삼베로 감싸여 있다. 우리 국가와 사회가 한 세대 전에 사회 각 영역의 모든 당사자가 인권 보호의 주체이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 보장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였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억울한 죽음들이 우리로 하여금 ‘인권경영’이라는 다소 생소하지만 필요한 길을 열심히 가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느낀다. 기해년 새해가 인권경영의 기치 아래 사회 곳곳에 인권의식이 스며드는 인권도시 부산의 새로운 원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소망해 본다.

 

[2019.01.08.(화) 부산일보 오피니언 30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