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일보/부일시론] 상식(常識)과 법리(法理) 사이 -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8-30 오전 10: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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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부일시론] 상식(常識)과 법리(法理) 사이
-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은 상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형사재판에 국민을 배심원으로 참여시켜 유무죄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게 하는 것은 재판의 민주화와 더불어 상식이 통하는 법정을 만들려는 의도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상식으로만 재판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고, 상식이 각자의 고집과 선입견으로 얼룩지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각각의 상식이 난무하여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는 때문인지 배심원의 평결이 권고에 그치도록 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일반 시민들이 통상의 사건에서 보다 상식에 부합하는 사리분별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본인이 거부하는 바람에 불발되긴 했지만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물론 배심원들이 사회 여론에 떠밀려 사실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판사가 말하는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의 구별에 있어서는 다른 의견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개념의 구별은 일반 시민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쉽지 않다고 하여 무조건 무시할 차이는 아니지만, 일반 시민의 상식은 두 개념을 같게, 적어도 유사하게 볼 가능성이 높다. 권력관계에서 상관이 '위력을 가지고는 있으나 드러내지 않고' 부하에게 일정한 요구를 할 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행사되지 않은 위력이 있다고 할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권력관계가 곧 위력의 행사라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상식에 입각한 적극적 법률 해석자의 눈에는 띄지만, 철저히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 서서 순수한 법리로 무장한 법관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

  법리는 못 보는 사각지대 존재
  상식적 의심만으로 단정 안 돼

  상식은 법리라는 안전판 갖추고
  법 논리는 상식 눈높이와 맞아야

  '법은 상식'이라는 말 통할 때
  법에 대한 국민 신뢰 높아질 것


  물론 상식에 기초한 판단에 허점이 있을 수도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특검의 공소 제기 핵심은 김 지사와 '드루킹'의 공모 여부다. 그리고 공모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요소들 중 핵심적인 사실은 경공모 사무실 방문 시 '킹크랩'의 시연회에 참가했는지에 있다. 법률 전문가는 '현장에 갔으나 시연을 보지 않았다'는 점을 공모가 없었다는 강력한 반대증거라고 판단하겠으나, 일반인은 '사무실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로 두 사람이 함께 한 배를 탄 동업자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런 의심이 단정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증거재판주의'가 버티고 있으며, '무죄 추정의 원칙'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상식에만 이끌리면 김 지사가 그곳에 갔다는 사실이, 그리고 드루킹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시연을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상식과 법리의 차이인 것이다.

  최근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에서는 상식과 법리가 치열한 내적 갈등구조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이 그리는 '진실'은 재판 과정에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기억에 기초를 두고 증거로 복구된 과거는 실재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들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무리 돌이켜봐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수 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이 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어느 가족'으로 잔잔한 흥행몰이를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중 '세 번째 살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판검사, 그리고 변호사는 형법상 살인이라는 구성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법리라는 안경을 통해 증거를 수집하고 맞춰 보지만, 이를 통해 밝혀지는 '범죄사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뻔한 것이 법리의 안경을 쓰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재판 거래' '사법 농단'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아마도 그 출발은 아주 단순한 '상식'으로부터의 이탈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평범하게 생각했다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을 그들은 특수한 논리로 넘었을 것이다.

  이렇듯 상식이라는 부표(浮標)는 파도에 휩쓸려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법원이, 그리고 법조인이 항상 상식을 따를 수는 없고, 법리라는 든든한 안전판을 갖추어야만 한다. 하지만 법률가들의 법 논리가 일반 시민의 건전한 상식의 눈높이와 맞추어질 때 재판의 호소력은 높아지고, 판결의 공감대는 넓어질 것이다. 그때야 국민은 비로소 '법은 상식'이라는 오랜 속담이 참으로 타당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고 법은 우리 사회의 든든한 닻이 되어 줄 것이다.

 

[2018.8.30.(목) 부산일보 오피니언 34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