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인문학 칼럼] 한반도의 봄, 동아시아의 봄 - 홍순권 사학과 교수 2018-05-10 오전 10: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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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인문학 칼럼] 한반도의 봄, 동아시아의 봄
- 홍순권 사학과 교수

 

 
   
 

홍순권
사학과 교수

  한반도에 진정으로 봄이 오는 것일까?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이 같은 기대를 한껏 부풀게 하였다. 그날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과 놀람, 그리고 감동의 연속이었다. 남과 북의 정상이 함께 분계선을 넘나든 일이 그러했고, 정상회담을 올림픽 중계하듯이 종일 방영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 남북 정상회담 자체만으로 최근 국내외 정세의 극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이미 4·27 판문점선언은 21세기 현대사의 일대 사변이라 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 되고 말았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민족 분단이 고착화된 이후 남과 북이 처음 대화를 시작한 것은 19년이나 지난 1972년의 일이다. 그해 여름 갑작스럽게 발표된 7·4 남북 공동성명의 충격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날 전국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남북공동성명에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등 이른바 통일 3원칙을 핵심으로 하는 합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로 인해 남북 공동성명은 머지않아 통일이 곧 다가올 것만 같은 기대를 잠시나마 국민에게 안겨주었다.

  7·4 남북 공동성명은 적대 관계에 있던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는 등 급변하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공동의 위기의식을 느낀 남과 북이 비밀 교섭을 통해 극적으로 합의한 사항이었다. 그 배경이야 어쨌든 이때 남북 간에 합의된 통일 3원칙은 여전히 유효한 남북대화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0월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를 선포함과 동시에 다시 북한과의 대결 국면으로 자세를 바꾸었고, 북한 또한 새로운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남과의 체제 경쟁에 박차를 가하였다. 남북관계는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봄은 착시였고, ‘겨울공화국’은 계속되었다.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남북대화는 노태우 정부 때 재개되어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이때도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가 그 배경이 되었다. 이후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재개된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이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거기서 6·15 남북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6·15 공동선언에 입각하여 시작된 남북 간의 교류는 경제와 문화 등 사회 전 분야로 확대 발전되어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인 2007년 남북 정상 간의 10·4 공동성명 발표로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뒤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사실상 대화가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 남북관계는 대화와 단절을 반복하면서 순탄치 않게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남북 관계의 변화 저변에는 국내정세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의 변화가 또한 기본적인 동인으로 작동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부가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강한 의지를 가졌을 때는 북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5월 촛불 민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미국에는 대북 강경 노선의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장차 남북 관계를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았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4월 27일 판문점선언은 정세변화에 있어서 역사상 보기 드문 반전이다. 많은 국민이 판문점 회담 생중계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제 국내외 정세는 남북 관계를 넘어서 북미 관계,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마 그 전환점은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이 될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식민지 지배 청산의 미완에서 비롯됐다. 한반도로 국한해서 보면 남북의 분단이지만, 시야를 확대하면 종전 이후 동아시아의 분단 속에 한반도 분단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냉전으로 동아시아가 분단된 가운데 한때 베트남이 그러했고, 중국과 대만 관계 또한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오랫동안 미국에 점령되었다가 반환된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도 따지고 보면 미완의 종전 즉 냉전의 산물이다. 이러한 상태가 미소 냉전의 붕괴 이후에도 유독 동아시아에서만 지속되어 왔다.

  이 지점에서 문득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서문에 쓰인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합구필분 분구필합(合久必分 分久必合, 천하가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되고, 분열이 오래되면 언젠가 통합되게 마련이다)’라고 했던가.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4월 27일 판문점 만찬장에서 오연준 군이 부른 ‘고향의 봄’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단지 오 군이 노래를 잘 불러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봄을 너무나 애타게 기다렸던 ‘민족의 봄’으로 받아들인 것은 나 혼자만의 감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봄이 오면 동아시아의 봄도 함께 올 것이다.

 

[2018.5.10.(목) 국제신문 오피니언 31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