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일보/부일시론] 좋은 개헌으로 가는 길 -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3-27 오후 1: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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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부일시론] 좋은 개헌으로 가는 길
-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시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 직속 헌법특위가 마련한 개헌안이 법제처의 일부 수정을 거쳐 정식으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어 의결됐다. 대통령의 결재까지 이뤄졌으니 이제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청와대가 마련한 헌법 개정안 전문(全文)을 전문가적 시각을 내려놓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찬찬히 보면서 '좋은 개헌'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먼저 우리나라의 모든 규범의 기초가 되는 헌법이 한글화되고 알기 쉬운 용어로 탈바꿈했다는 것은 좋은 출발이다. 요즘 TV를 통해 자주 듣게 되는 '증거 인멸의 염려'라거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에서 '인멸' '조력' 등의 어려운 한자어들이 사라지고, '~의하여'와 '~에 있어서' 같은 일본식 표현이 지워져 쉬운 국어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것보다 더욱 신선한 것은 천부인권적 성격이 강한 기본권의 영역에서 '국민'이라는 용어 대신 포괄적인 의미의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점이다. 이는 기본권 보장 과정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여 헌법이 국제규범에 맞춘 인권장전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공식 발의된 대통령 개헌안
  사회적 약자 보호 강화 긍정적

  국민에 익숙한 대통령제 유지
  폐해 없앨 근본적 고민 부족

  더 나은 세상 만드는 헌법 기대
  국회 개헌 논의 지혜 모아야


  하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도 없진 않다. 4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그중 두 명은 동시에 구속된 우리 현실에서 '대통령제'가 아직도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었다고 하나, 우리가 걱정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제거하기 위한 정부 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더욱 치열하게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야당들이 주장하는 국회에서의 국무총리 선출이나 추천 같은 '의원내각제적 요소'들에 대한 전면적인 수용은 아니더라도 그저 오랫동안 국민에게 익숙한 제도로써의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한 개헌안은 '개헌'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여론조사라는 국민의 편안한 정서에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를 갖게 한다. 덧붙여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 시기를 지방선거와 일치시킴에 따라 개헌이 지방선거의 이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지방분권'을 핵심으로 내건 개헌안의 취지마저 퇴색되어 버릴까 우려가 된다.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지만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우선 전문(前文)인데, 전문의 전반부가 헌법 이념의 역사적 전환점을 담고 있으나 이는 이후 새로운 역사적 흐름에 따라 다시 개정의 대상이 될 것이고, 후반부의 헌법의 지도강령들은 한 문장 안에 지나치게 많은 미사여구가 나열돼 있어 우리 헌법의 정신적 지주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보다 분명하고 단순한 '헌법철학'이 제시되어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전문이 되길 바라 본다.

  또한 이번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개헌안 통과보다는 국회가 헌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압박하는 측면이, 그리고 개헌의 속도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잠시 미국의 헌법 개정(Amendment)을 들여다보자. 대표적으로 그토록 논란이 많은 '총기 규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무기 소지'를 인정한 수정헌법 제2조를 두고 문제가 있으니 없애 버리자는 이른바 '쉬운 개헌'을 거부하고, 비록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조항이라도 제정 당시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함으로써 이 기본권이 '개인의 권리'인지, '주(州)의 권리'인지를 놓고 깊이 고민하며 갈등하는 '어려운 개헌'을 선택하고 있음을 참고해 볼 만하다.

  이제 개헌열차가 출발했다. 국민 상당수는 '개헌' 자체는 동의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용어들로 채워진 헌법 문구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특권이 없어진 평범한 국회의원들이 진영논리를 떠나서 정말 국익과 민생을 위해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며 지혜를 모아 주길, 그래서 새로운 헌법이 다음 세대에게 좀 더 행복한,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는 데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간절할 것이다.

  이번 헌법 개정 과정은 결과물보다는 과정 그 자체로 국민을 더욱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비록 선후가 다소 흩뜨려졌을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라도 국회 내에서 이런 국민의 소박한 소원을 시원하게 풀어 줄 생수 같은 대화들이 오갔으면 한다. 정파와 이념이라는 '미세먼지'로 가득한 이 땅 한반도에 청정한 새바람이 불어오길 평범한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진정으로 참 좋은 개헌이 될 것이다.

 

[2018.3.27.(화) 부산일보 오피니언 30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