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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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보장은 이 일시적 존재를 다음 사람과 이어준다. 앞선 사람은 자신이 끝낼 일이 아니라 뒷사람과 이어질 일을 수행한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가 하던 일은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고, 그래서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개인의 이벤트가 쌓여 사회의 역사를 이룬다.
원불교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초청을 받아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마침 그 대학에 근무하는 오랜 벗이 안내해주어 잠시 캠퍼스 탐방을 하게 되었다.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는데 야트막한 언덕의 숲속에 몇 채의 단아한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강의실이나 연구실로는 보이지 않아 무엇인지 물었더니 원불교 교단에서 봉직한 분들의 은퇴 후 거소라고 하였다. 종단에 귀의하면 따로 개인재산을 갖지 않으므로 노후를 교단에서 돌보는 시설이었던 것이다. 사실 종교인들의 노후 문제는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불교와 개신교는 이 문제가 꽤 심각하다. 사찰이나 교회에서 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일들이 사실 이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원불교의 노후 대책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복지가 전공이 아닌 내가 이런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지속 불가능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벤트만 있고 역사가 없는 현상, 흔히 냄비근성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원불교의 노후 대책은 이 문제를 돌아볼 좋은 단서를 제공해준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의 흐름에 지배를 받고, 그래서 일시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노후 보장은 이 일시적 존재를 다음 사람과 이어준다. 앞선 사람은 자신이 끝낼 일이 아니라 뒷사람과 이어질 일을 수행하고 원불교의 경우 그것은 영생의 교리일 것이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가 하던 일은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고, 그래서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개인의 이벤트가 쌓여 사회의 역사를 이룬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이런 역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은 쉽게 확인된다. 희망버스 덕분에 어렵게 새로 구성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에 강의하러 갔을 때이다. 조합 간부들과 힘들었던 투쟁의 회고담을 나누던 중 위원장이 이런 말을 던졌다. “다녀간 사람 대다수는 이벤트성 분위기에 휩쓸린 느낌이었지만 단 한 사람만은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었어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정동영 의원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보여준 진심이 나중에 사회적 관심이 가라앉은 후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위원장의 말에는 감동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정 의원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철수 의원을 좇아 국민의당에 입당했다가 지금은 민주평화당에 속해 있다. 상임위는 국토교통위 소속이다. 노동운동과 더 이상 관련이 없다.
노동운동가를 감동시킨 그의 진정성은 노동운동과 결합하지 못하고 희망버스에서 멈춰서 버린 것이다. 그의 진정성이 거짓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멈춰 세운 것일까? 그가 만일 원불교의 사례처럼 자신의 진정성을 이어갈 가능성을 찾았다면 그렇게 멈추었을까? 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노조위원장들은 임기가 끝나면 현장으로 복귀한다.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쌓은 지도력과 노하우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다음 사람은 없다. 그는 “혼자”이고 그의 활동은 자신에게서 끝난다. 정 의원이 떠난 까닭이다. 노사정위원회 문성현 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모두 노동운동에 진정성을 담았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노동운동을 떠났다. 우리 민주노조 운동이 30년 동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노동운동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10년 이상 당명을 유지한 정당이 없고 세월호의 비극, 광장의 촛불, 국정농단의 대통령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다. 인물과 이벤트만 있고 다음 사람으로 이어지는 이념과 역사가 없는 것이다. 역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대 최고의 전략가로 손꼽히던 제갈량과 카이사르가 대비되는 교훈을 전한다. 오장원에서 쓰러진 제갈량은 촉나라와 함께 사라졌지만 원로원 회랑에 쓰러진 카이사르는 제국의 로마를 남겼다. 제갈량은 인물로만 남았고 카이사르의 이념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가들의 교의가 되고 있다. 후사를 잇지 못한 제갈량과 일찌감치 아우구스투스를 설계한 카이사르의 차이 때문이었다. 로마인들의 오랜 경구가 그 차이를 설명해준다. “memento mori.”(메멘토 모리·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남북 대화, 노사정 대화, 개헌 등 시대적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것들이 한낱 이벤트로 끝날지 역사를 이룰지 이 경구의 의미로 되새겨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