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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추운 날씨가 많아서 그런지 주변에 상을 당하는 분이 부쩍 많았다. 다른 조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행정업무시스템을 통해서 결혼, 장례 등 경조사 내용이 전체 구성원에게 공지된다. 문제는 이럴 때마다 고민이 깊어진다. 당연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관계라면 참석하여 기쁨을 더하고 슬픔을 나누겠지만, 평소에 교류 없이 이름이나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참석과 불참 사이에서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주변의 눈치와 부담 때문에 할 수 없이 '얼굴도장'을 찍는 일이 다반사다. 이것이 본질이나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은 '영혼 없는 자리'이다.
마음 없어도 참석 한국 문화
자기 의견 분명한 美와 달라
평창올림픽 리셉션장서 충돌
한·미 이간책, 시간벌기 비판
남, 남북화해 무드 연장 고민
북 진심 드러날 때 임박 '주목'
한국 문화에는 마음에는 없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참석하는 '영혼 없는 자리'가 무척 많다. 대표적인 것이 경조사겠지만, 명절 때 며느리가 남편의 부모님이니까 최소한의 온기를 유지하는 것 역시 '영혼 없는 자리'이다. 최근 설이나 추석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기록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들의 명절 탈출은 형식적인 자리를 피하고자 하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을 연결하려는 자리를 만들었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 장소에서 미국과 북한을 억지로 앉혀 놓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려 했던 것이다. 정부는 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의 헤드 테이블에 문재인 대통령 부부, 펜스 미국 부통령 부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12명을 함께 배치했다. 수십 년 동안 서로 적대 관계를 이어온 미국과 북한을 마주 앉게 하려 하였다. 아베 총리는 행사장 헤드테이블에 착석했지만, 펜스 부통령은 마련된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테이블에 앉은 정상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퇴장했다. 그는 북한의 김영남과 악수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영혼 없는 자리'를 거부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펜스 미국 부통령이 행사 도중에 자리를 뜨는 등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한다. 우리가 마련한 잔치에서 굳이 펜스가 김영남을 외면할 필요가 있었는가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사전에 면밀하게 검토하고 합의된 절차에 의해 움직이는 외교 무대에서 소위 '번개팅'을 주선한 우리 정부를 나무란다. 필자가 보기에는 마음에 없더라도 감수하고 희생하는 한국 문화와 자기 의견이 분명한 미국 문화가 충돌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이 1주일 남았고 폐막식과 함께 성화가 꺼지면 현실의 무대가 다가올 것이다. 과연 남북 간 화해가 지속될 것인가? 미국과 북한은 대화를 할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북한의 핵 위협은 사라질 것인가?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은 분리해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3년 발표된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미국, 중국, 일본 등 열강의 틈새에서 남북이 협력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에 핵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 핵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대의 입장은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의 대화도 거부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는 시간 벌기 작전이고, 한국과 미국 동맹을 이간시키는 전술이라고 한다.
이러는 사이 우리 정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과연 우리는 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화해의 무드를 이어가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과 '비핵화' 논의를 수면 밑으로 내릴 것인가, 아니면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는 동맹국 미국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가. 현재로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맹국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입장이 분명하지만, 북한의 유혹이 거세지면 우리 정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분명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 많은 외교적 성과를 쌓았다. 우리 국민들도 모처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선수들 응원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받았고 평양으로 초청을 받았다. 과연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한 것이 '영혼 없는 자리'였는지, 아니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심이 담긴 자리'였는지는 곧 판가름이 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