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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욱
한국어문학과 교수
| 롱패딩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다룬 기사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저 대열의 익숙한 풍경이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어떤 면면을 징후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긴 대열에 줄을 서게 만드는 유행의 압박이 어디 겨울의 패딩뿐이랴.
무리 속에 합류하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심리의 강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줄을 세우는 문화는 이 나라에서 이미 오랜 연원을 갖고 있지만, 줄을 세우는 이유나 방법은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며 변모해 오지 않았는가. 저 대열에 끼이지 못한 자들이 낙오자로 취급되다가 끝내 은둔하는 외톨이로 고립되는 일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고립이 무서워서 길게 늘어선 대열의 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체에 포함되지 않는 개체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전체주의이다. 히틀러나 스탈린의 체제만이 그런 전체주의의 대표 사례인 것은 아니다. 그런 우악스러운 전체화의 힘은 오늘날 쉽게 반발에 부딪힌다. 물리적인 강제력으로 대열에 합류하게 만드는 하수(下手)의 방법이 아니라, 지금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가운데 자발적으로 그 줄에 서게 만드는 기묘한 홀림의 기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운위되는 다양성의 시대, 차이를 존중하는 개방성과 역동성의 포스트모던을 소리 높여 떠드는 이때 전체주의라니? 그것이 개성이라고 하면서 모두가 그것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니까, 그러니까 무서운 것이다. 개성이라는 이름의 획일화, 이 심오한 역설이 이 시대의 강력한 전체주의로 군림하고 있다.
TV에서는 줄 세우는 문명의 힘에 상처받은 이들이 자연으로 흘러들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유자적 은둔하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이 있을 거다. 그들을 지켜보는 어떤 이들은 자기가 서 있는 대열의 압박이 주는 중압에 지쳐서 그 ‘자연인’들의 삶을 깊이 동경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자연인들을 재연하는 그 방송의 스타일도 천편일률의 패턴을 반복하며 상투화되어 간다.
우리들은 대열의 이탈자들마저도 그렇게 또 하나의 전체적 틀 속에서 잔혹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탈은 예외 없이 전체의 회로 속에서 동일화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의 그런 단면을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말로 압축하였다. 은둔하는 이들을 찾아내고 쫓아가 끝끝내 그들의 고독마저도 진귀한 구경거리로 만천하에 공개하는 잔혹함. 이제는 아예 숟가락 하나 들고 아무 집의 벨을 누르고 한 끼의 식사를 요구하는 예능까지 인기를 얻고 있지 않은가. 그런 침범이 진정 이방인에 대한 기꺼운 환대를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아직 남은 우리들의 이웃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고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고독사마저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고독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외로움에 치를 뜬다. 고독 속에서 고요히 사색할 여유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리 지은 사람들의 대열을 찾아 헤맨다. 카페의 급증과 SNS 접속자의 폭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를 전시함으로써 타인의 인정을 얻어내려는 조급함이 개인의 비밀스러운 영역들마저 탈탈 털어내게 만든다. 그렇게 탈탈 털려서라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수록 더 민망하고 그럴수록 더 상처받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리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고독한 단독자, 니체의 초인까지는 아니라도 좋다. 어떻게 하면 저 징글맞은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카페에서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아도,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갈망하지 않아도 홀로 견뎌낼 수 있는 견고한 고독의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값비싼 롱패딩이 없이도 겨울 한 철을 기꺼운 마음으로 보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에게 명쾌한 해답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전체로부터 위안받으려는 나약한 개체의 의지가 전체주의의 온상이라는 것을. 외로움을 고독의 시간으로 비약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고 마는 것은 익명의 무리 속에서 내가 익사 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들판의 밀이 식탁의 빵으로 되는 것이 극기복례(克己復禮)다. 전체의 무리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멸사(滅私)가 아닌 극기를 말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