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욱 한국어문학과 교수

   지방의 사립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거의 매일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돌이켜보면 강단에 섰던 지난 십여 년의 시간이 무심하게 흐르는 동안, 한국의 대학들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스무 살 초반의 청년들이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나의 강의를 경청하는 일상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강의실의 기자재들이 더 좋아졌고, 학교의 낡은 건물들이 정비되고 새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그것이 큰 변화라는 실감은 없었다. 이런저런 학사행정의 개편이 있었으나, 학생들에게 그런 변화는 그다지 크게 감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대학 당국이 느낀 변화의 실감은 절대 작지 않았다. 학령인구의 감소가 가져온 압박에 더해, 평가와 지원을 앞세운 교육부의 권력은 더 막강하게 다가왔으리라. 그런 변화에 수반해 입학정원이 줄어드는 한편, 학과의 통폐합이 늘고 교원과 직원의 비정규직 비율이 늘었다. 이런 변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급변하는 시류에 빠르게 응용될 수 있는 실용의 학제가 근본적인 것들을 탐구하는 기초학문을 밀어낸 것이다. 이 모두가 지난 이십여 년간 강력하게 추진된 교육 환경의 신자유주의적 전환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나는 여기서 모든 탓을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악마화된 관념에 전가하는 식의 맥없는 비판을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변화를 막을 수 없고, 선제적인 혁신으로 대학을 살리는 일은 대학의 구성원 모두에게 부과된 시대적 과제이다. 그 책임을 방기하고 지난 시절의 미비한 제도와 방만한 운영의 구태 속에서 누려온 안위를 지속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곧 적폐세력이다. 　

  
그렇다면 피할 수도, 또 피해서도 안 되는 교육의 혁신, 대학의 변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나는 솔직히 그 복잡하고 정교한 속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변혁이 학생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그들은 학생이나 청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고귀하고도 고유한 사람들이다. 나는 매번 그들의 생생한 얼굴을 마주한다. 그 얼굴의 표정들에서 절망의 현실을 견뎌내고 있는 어떤 안간힘을 읽는다. 경제성장률은 높고 대학진학률은 낮았던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은 경향의 차이나 서열화의 정도에서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또래들에 대하여 윤리적인 책임의식을 느꼈고, 서로 다른 대학의 학생들이 연합하여 공적인 대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경쟁이 첨예화되면서 청년들은 공공적 대의와 연합보다는 개인적인 생존과 성공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청년들의 보수화를 질타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엄중한 실존은 보수와 진보 따위의 이념적 논란들을 훨씬 뛰어넘는다. 2014년 타이완의 해바라기운동과 홍콩의 우산혁명, 2015년 일본에서의 이른바 실즈(SEALD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의 안보법안 투쟁은, 청년들이 처한 삶의 위기가 단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적 지평 속에서 읽혀야 할 세계사적인 난제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한국의 88만 원 세대, 일본의 로스제네, 중국의 바링허우(80後)로 명명되는 동아시아 청년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극단적인 경쟁과 양극화의 현실이다. 그러나 반복하건대 그들의 저항은 이념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박한 생존의 투쟁이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만 우리는 그 불온한 시대에 불화하는 청년들의 집단적 행동이 갖는 정치적인 의미를 가늠할 수가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미국의 강경한 응대가 한반도의 안보위기를 가중하고 있다. 고착된 분단체제로부터 기득권을 유지하는 냉전 세력은, 그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려고 한다. 감히 말하건대 지금 우리의 청년들이 처한 삶의 위기는 북한의 핵 도발에 버금간다. 그럼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 불안과 위기의식에 공감하기는커녕,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인 어른들이 설쳐대는 현실을 어찌해야 하는가. N포세대와 수저론, 헬조선과 노오력과 같은 신조어가 청년들의 삶을 수식하는 그런 사회가 이대로 더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절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앉는 그들 앞에서, 나는 어떤 선생으로 살아야 하는가. 생존을 걸고 살아간다는 것에서는 마찬가지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한없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