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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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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울렸다. 오랜만에 온 후배 시인의 전화였다. 책을 한 권 내었으므로 보내겠으니 주소를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사 보겠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 선배님 이야기도 나오는 데요." "아니 무슨 이야기가?" "왜 그 전에 몽골과 러시아에 함께 갔었잖아요? 그때 제가 사진을 찍느라고 돌아다니던 것 생각 안 나세요?" 그 후배는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창은 그리움, 그 그리움에 버틴 삶
구석진 곳 숨어 있는 아주 작은 창들
권력자와 우리, 모두 잘 들여다봐야
신선한 바람에 사회 갈등 줄어들어
"생각나, 러시아 할머니집이었지? 남편은 참전용사였으나 전장에서 돌아가셨다던 그 할머니." "그 집 창 생각 안 나세요?" "아니, 남편 베개에 두른 예쁜 레이스 베갯잇하고,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프라이팬과 냄비들은 생각나는데…." "그 집 창에는 창문 가장 위쪽에 손바닥만 한 작은 창이 또 하나 있었어요." "그래? 그런 건 못 봤는데…."
후배 시인은 꼬마 창이 열린 집이 많은 샤갈의 그림, 창호지를 약간 뚫어 바깥을 내다보던 옛 한옥 방까지 들먹이면서 나에게 러시아의 꼬마 창을 설명했다. "그랬군. 아마 러시아는 추운 나라니까, 환기를 위해서 가끔 아주아주 작은 그 꼬마 창을 열어놓았던 거였겠지?…"우리는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여러 가지 생각이 달려왔다. 나는 다시 그 창을 떠 올렸다. 왜 나는 그 창을 못 보았을까. 아니 창이란 무엇일까, 나의 꼬마 창은 러시아의 꼬마 창처럼 신선한 바람을 끌고 들어오고 있는가. 나는 언젠가 쓴 나의 '단어'라는 시를 떠올렸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찾아 길을 떠난다. //누구는 생이라하고/누구는 악수라 하고/누구는 봄비소리라 하고/누구는 항구라 하고/…길은 많기도 하고/길은 없기도 하고/…."나는 그 시를 패러디해 본다. "지상에서 가장 작은, 아주아주 작은 창을 찾아 길을 떠난다/누구는 생이라하고 /누구는 그리움이라 하고/…/없는 길이라 하고/창은 안내자이기도 하고/창은 무덤이기도 하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또 한 생각이 달려온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 보고 있는가, 아니 잘 보고 있는가. 자기만큼만 보는 것인가. 내 눈의 넓이는 결국 프라이팬이나, 냄비만 한가. 그러니까 내 눈의 그릇은 그만큼이라는 것일까. 릴케의 에세이 같은 소설, 말테의 수기가 떠오른다. " 내가 이미 말했던가?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래, 나는 시작했다. 아직 서투르지만 시간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려 한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얼굴이 있는가를 한 번도 의식한 적이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보다 훨씬 많다."
창유리 사이로 아랫동네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맞이하다 보니 창은 그리움이며 그 그리움으로 내 삶의 '여기까지'왔다는 생각이 이번에는 거의 달려들었다. 그리움은 나에게 그 무엇인가를 늘 찾게 했고 나의 삶은 곧 그 찾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다는 것과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한다.
가끔 책상 위의 볼펜을 보면서도 그 볼펜을 찾는다. 안경을 찾아 온 집을 헤맨다. 나중에 보면 안경은 바로 내 얼굴 위에 있다. 김수영 산문집을 찾아 책장을 헤맨다. 어제 분명히 있었는데 영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김수영 산문집이 여기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래서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들 사이에서 일어서 책방을 나온다. 그러다 그 다음 날인가 어느 순간 그 방엘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목매어 찾던 김수영 시집이 구석에 떠억 서 있는 것을 만났다. 김수영 산문집에의 그리움, 혹은 시인 김수영에게의 그리움, 그것이 김수영 산문집에 나를 데려간 것이었다.
오늘부터 모두 얼마나, 아, 얼마나 구석구석, 얼마나 작은 것이, 또는 숨어 있는 것이 찾아지기를 기다리면서 있는지를 헤아릴 일이다. 아주아주 작은 창일지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잘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나 작은 것들이, 작은 사람들이 그 손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그리워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갈등은 줄어들 것이다. 신선한 바람을 끌어들이는 아주아주 작은 꼬마 창이 집집마다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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