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강신준 칼럼]제2의 김상조는 어디에 있을까 -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2017-10-10 오전 11: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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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강신준 칼럼]제2의 김상조는 어디에 있을까
-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제2의 김상조가 없는 까닭은 1997년 이후 이들 토양이 코앞의 기업 이윤에만 봉사하도록 강요받으며 메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들어놓은 결과가 헬조선과 촛불혁명이다. 이 토양에 공동체의 미래라는 비료를 뿌리면 제2의 김상조는 자라날 것이다.  

  
의지와 현실의 간격이 드러나고 있다. 취임 초 촛불 민심에 부응하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었던 대통령이 막상 의지를 실천에 옮기면서 괴리를 보이는 것이다. 인사 문제가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의지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잇따라 낙마하는가 하면 각료들끼리 견해가 부딪치는 볼썽사나운 일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의지의 진정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일부 인사의 실패가 의지의 발목을 잡아서도 안 된다. “행동하지 않으면 오류도 없다!” 헤겔의 경구가 아니던가? 실패와 오류는 의지를 실천에 옮길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 거기에서 드러난 의지와 현실의 간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간격을 메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복되는 간격이 그대로 의지의 굴절로 굳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단서가 될 만한 일화가 있다. 대선 얼마 후 진보 성향의 한 학회 뒷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 정부의 인사에 대한 논평이 오갔는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은 인물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그 분야의 연구와 실천 모두에서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담소의 말미에 한 분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 김 교수가 우리 모임에서는 제일 막내랍니다!” 학회 바깥의 소모임 얘기였는데 김 위원장의 뒤를 이을 후배가 없는 현실을 토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이 소모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적인 연구자 집단 모두의 문제이다. 후속 연구자가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래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과거에 씨앗을 뿌려두어야 미래에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제2의 김상조가 없다는 것은 그런 씨앗이 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사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이 뿌려둔 씨앗이 아니다. 혼자 자란 야생화나 다름없다. 지난 대선 1000명의 대규모 자문단을 꾸릴 때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인재가 “차고 넘친다”고 얘기하였다. 그런데 그중 민주당이 직접 뿌려둔 씨앗은 몇이나 될까? 여기저기 외부에서 끌어모은 꽃다발은 당장 보기에 좋을지 모르나 모두 저마다의 뿌리를 잃었기 때문에 곧 시들어버린다. 뿌리에서 직접 자란 꽃이 오래가고 열매를 맺는다. 민주당은 그런 뿌리를 가지고 있을까?  

  
지난 총선 김종인 대표의 영입은 민주당이 그런 뿌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남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 이전 10년을 집권했고 호남의 지역 기반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제2의 김상조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핀란드의 교육개혁, 독일의 생산직과 사무직의 칸막이 철폐에는 모두 30년 이상이 걸렸다. 적폐는 사람 속에 쌓여 있고 사람이 청산되는 데 한 세대가 걸리기 때문이다. 선거로 집권하는 기간은 5년이다. 이 정부의 적폐청산도 5년을 넘길 수 없다. 그다음은? 적폐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30년을 이어갈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야 한다. 오랜 기간 자질을 검증하고, 10년 만에 집권 기회가 오더라도 준비된 인력으로 과거의 정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 문제의 해법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집권의 성공보다 정책의 성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본래 정당이란 정책의 실현이 목표이고 집권은 그 수단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씨앗을 어떻게 뿌릴 것인가? 씨앗이 자랄 토양을 조성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 토양은 교육과 연구의 영역이다. 제2의 김상조가 없는 까닭은 1997년 이후 이들 토양이 코앞의 기업 이윤에만 봉사하도록 강요받으며 메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들어놓은 결과가 헬조선과 촛불혁명이다. 이 토양에 공동체의 미래라는 비료를 뿌리면 제2의 김상조는 자라날 것이다. 토양을 정당이 직접 조성할 필요도 있다. 독일 사민당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그런 사례이다. 1925년에 설립된 이 재단은 매년 2000억원이 넘는 정부예산(2015년 기준)으로 약 600명의 인력이 교육과 연구의 씨앗을 90년이 넘도록 계속 뿌려오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재단을 이런 기구로 발전시킬 수는 없을까? 물론 정부예산을 배정하려면 야당도 이런 재단을 조성하도록 협의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독일에서도 기민당의 아데나워 재단이 뒤늦게 만들어졌다. 제2의 김상조는 의지와 현실의 간격을 메우는 해법이자 민주당의 미래를 재구성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번 집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려면 그래야만 한다.

 

[2017.10.2.(월) 한겨레 본지 26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