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강신준 칼럼]적폐청산의 양날과 노동의 갈림길 -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2017-09-04 오후 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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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강신준 칼럼]적폐청산의 양날과 노동의 갈림길
-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기업별 교섭에서 출발한 민주노조운동이 거기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이 적폐를 청산하고 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해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기적의 왕도는 없다. 노동계 스스로 오래전 찾았던 해답, 기업별 교섭 관행에서 벗어나 사회적 교섭 진용을 구축하는 일뿐이다.  

  
“위기는 기회이다!” 반전의 의미를 담은 이 말에는 또 한 번의 반전이 숨겨져 있다. 기회는 새로운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많은 역사적 사례가 그것을 받쳐준다. 4·19혁명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1980년 서울의 봄은 전두환을 불러왔다. 이 말이 지금 우리 노동운동에게 그대로 닥쳐 있다. 최대의 노동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가 빌미가 되고 있다. 적폐 청산을 내세운 새 정부는 첫 행보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거기에 노동문제 사령탑인 고용노동부 장관과 노사정위원회 위원장도 모두 노동계 인사로 채웠다. 문제 해결의 기회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기회만이 아니라는 것이 당장 드러나고 있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가 불씨가 되었다. 전교조와 임용 관련자들이 반대 입장을 밝히고 기간제 교사들이 이에 반발함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오던 민주노총은 정작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기회가 새로운 위기로 닥친 것이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위기가 지속될 동안에는 문제의 해법을 외부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외부의 장막이 걷히면 해법의 칼날이 내부를 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내부에 준비된 해법이 없으면 기회는 위기로 돌변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1997년 노동법 개정으로 본격화되었다. 20년이나 된 문제이다. 우리 노동계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원인도 해법도 벌써 알고 있었다. 전노협은 이미 1990년 창립선언문에서 산별노조 건설을 앞세웠고 1995년 민주노총도 이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비정규직은 1997년 이전에도 있었고 그것은 별개의 의제가 아니라 계급적 이해관계 전체의 한 부분을 이룬다. 우리 노동계는 이 문제를 포함한 계급적 이해관계 전체의 변혁을 지향하면서 사회적 교섭이 그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해법은 30년이 되도록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였다. 왜일까? 외부의 요인과 별개로 내부의 두 가지 실패가 있었다. 하나는 조직 통합이다. 전교조와 기간제 교사의 갈등은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어 있다면 이 갈등은 내부에서 봉합될 문제이다. 또 하나는 교섭 통합이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는 대기업 노동자들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기업별 교섭에 붙잡혀 있다. 임금격차 때문이 아니다. 그 해답은 이미 1997년에 만들어져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 물음은 노동계 내부의 적폐를 곧장 가리키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기업별 교섭에서 출발한 민주노조운동이 거기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짧은 임기에 주어진 사무실과 노조 인력으로 스스로 할 일은 닫아둔 채 마냥 상대에게서 받아내려고만 하는 단순한 교섭 관행, 그것이 적폐로 쌓여간 것이다. 상급조직도 똑같은 관행에 젖었고 결국 우리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를 “네 탓”으로만 미루고 적극적 해법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내부의 적폐를 남겨둔 채 청산한 외부의 적폐는 언제든 되살아난다. 변혁에 불가역적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 적폐를 청산하고 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해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기적의 왕도는 없다. 노동계 스스로 오래전 찾았던 해답, 기업별 교섭 관행에서 벗어나 사회적 교섭 진용을 구축하는 일뿐이다. 정부에 요구할 사항으로는 산별교섭의 지위를 확보하는 단체교섭법의 제정, 협약의 효력을 비정규 노동자에게 확장하는 일반구속조항의 도입이 있다. 정부와 사용자를 사회적 교섭으로 불러들일 유인으로는 노동계 스스로도 필요한 임금체계 개편이 있다. 기존의 연공형 임금체계는 기업별 교섭을 고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규약을 정비하여 조직과 교섭을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추진할 내부의 동력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일이다. 그래서 조합원 교육, 그것도 몇 시간의 교육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모두 지난 칼럼의 독일 사례와 지난 30년 노동계 내부에서 논의된 것들이다. 해답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그래서 올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는 노동의 갈림길이 될 것 같다. 내부 적폐의 청산이 촛불이 준 기회를 위기로 날릴지 기회로 살릴지 가를 것이기 때문이다.

 

[2017.9.4.(월) 한겨레 본지 26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