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건축학과 교수

   도시에서 풍경이 좋은 해안 길과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함'이란 표지를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원으로만 생각했는데 개인의 땅이라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도시의 공원·도로·항만시설은 도시의 발전과 공공의 복리증진을 위해 지정하는 도시계획시설인데 법으로 53종류의 시설을 지정하고 있다. 공공시설(공간)의 주체와 소유는 당연히 국가 혹은 공공기관이 되어야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개인의 사적 자산을 공공시설로 지정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충분한 보상이 제공되어야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공과 사에 대한 인식이 명확한 미국의 경우, 도시계획시설 집행계획을 사전에 의회에서 결정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때문에 미집행 시설이 발생하지 않으며, 유럽 각국의 경우 사업집행고시 후 5년을 넘길 수 없는 일몰제를 시행하여 사유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미 오랫동안 조성하지 않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들'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공공'에 대한 논의 시작해야 할 때
   '타인과 함께한다'는 뜻뿐 아니라
   '타인을 돌본다'는 의미도 포함해 　

   공공 주체, 국가 아닌 시민이어야
   부산의 공공 자산 지키기 위해선
   시민의 책임·역할 매우 중요하다 　

   전국 광역도시 중 도시계획시설 집행률이 꼴찌에 속하는 부산시의 경우 88.5%가 10년 이상 장기미집행 상태이며 이를 추진하는 데 무려 13조 8000억 원, 사유지를 매입하는 비용만 1조 4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2020년이 되면 20년 이상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 전면 해제되어 난개발을 우려하고 있다. 부산시에서도 법과 시행령 등을 개정하여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을 해소하려 다양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개인의 재산권과 공동체의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공공시설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매우 익숙하지만 생소하기도 한 '공공'이란 개념은 최근에는 도시뿐만 아니라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쳐 논의가 뜨겁다. 기업도 단순한 이윤 추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공생·소통이 강조되면서 공공성 윤리성 등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공'의 개념은 국가나 사회에 관계되는 또는 여러 사람에 관계되는 국가나 사회의 일을 의미한다. 특히 공적 성격을 뜻하는 '공공성'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관련되는 것이다. '공공'의 어원은 성숙(maturity)을 뜻하는 그리스어 'pubes'와 'koinon'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 '공공'은 '공동'과 '배려'의 의미가 부가되면서 '타인과 함께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을 돌본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적 이익을 넘어 타인의 이익까지 배려하는 공공성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최근 현대사회에서 공공시설의 문제는 공적영역 혹은 사적영역으로 구분하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시민과의 수평적, 협력적 형태로 성격도 개방적 가변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에 맡겨 두었던 공공적 역할문제가 최근 시민의 참여와 소통의 문제로 그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공공의 주체는 이제 국가 공공기관이 아니라 국민과 시민이 되고 국가와 공공이 협력하는 동반자적 개념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공공성은 단지 공공기관에 의한 물리적 환경개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문화 환경적 기능을 재창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2006년 봄, 완공이 된 미국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는 주변 호수의 풍경과 함께 시민들의 가장 사랑받는 휴식처이지만 원래 차고가 있었던 지역을 건축·기념 조각품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전액을 기부금으로 조달하였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내셔널트러스와 함께 문화유산국민신탁, 자연환경국민신탁 등의 단체에서는 도시의 문화자산과 자연자산을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공공의 자산으로 공유하자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풍경을 가진 낙동강 둔치도 일대와 해안 지역은 천연기념물의 서식처일 뿐만 아니라 생태환경 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며, 동래구와 중구 원도심에는 많은 문화자산이 남아 있다. 이를 공공의 이름으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도시의 공공시설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공공기관에게만 맡겨 두었다. 이제 시민들 스스로가 책임과 역할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