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저수지의 바닥 진흙 속에 살던 조개도 신음하며 타들어 가고 있다. 극심한 가뭄이 빚어낸 현상이다. 이제 겨우 장마 전선이 북상해 비를 뿌리고 있지만 극심한 가뭄을 다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주 낭산 동편에 구황동 삼층석탑(황복사지 삼층석탑이라고도 일컬었음)이 있다. 1942년경 이 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2층 몸돌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금동상자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692년 7월 2일에 신문왕이 돌아가시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의 비와 아들이 삼층석탑을 건립하였고, 성덕왕 706년에 재차 석탑을 중수하고 사리구를 추가로 봉안하였다는 것이다. 석탑이 건립된 지 14년밖에 되지 않은 706년에 석탑을 해체하고 사리구를 추가 봉안한 배경에 대해, 기존에는 성덕왕이 선대 왕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낡은 탑을 중수하여 공덕을 기렸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몇 년 전에 가뭄과 관련한 새로운 설이 제기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당시 신라 사회는 705~706년에 극심한 가뭄으로 굶어 죽는 백성들이 많아 피해가 심각했다. 이에 성덕왕은 구황동 석탑이 건립된 지 14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가뭄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사리구를 석탑 안에 추가로 봉안했다. 선조에 대한 추복 공양은 물론, 신라에 유입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지닌 위신력을 빌려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국난을 극복고자 하였던 것이다. 실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내용 중에는 지극 정성을 다해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법에 따라 다라니 주문을 써서 탑 속에 넣고 공양하면, 죽은 자는 악도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날 것이며, 아울러 탑을 세운 곳에는 일절 악귀가 없고, 전쟁 화재 수재 우박 기근 등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경주 지진의 역사에도 굳건히 견뎠던 황룡사 구층목탑이 지진의 역사를 대표하는 탑이라면,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은 가뭄의 재해 역사를 대표하는 탑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13m 길이의 대형불화인 상주 북장사 괘불탱(1688년)을 빼놓을 수 없다. 괘불탱은 경내 혹은 야외에서 행해지는 영산재, 수륙재, 기우재, 49재 등의 불교의식 때 사용하는 의식불화이다. 이 괘불탱 조성과 관련한 신비로운 연기설화와 비와 관련한 영험담이 상산지(尙山誌, 1694년경 간행)에 전해오고 있다. 설화 내용은 당나라에서 온 승려가 문을 잠그고 3일간 사람 왕래를 금하면서 괘불을 제작하였는데, 절의 한 승려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문틈으로 살짝 엿보았다. 그순간 파랑새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 버리고 승려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부처의 한쪽 어깨를 완성하지 못한 그림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북장사 괘불은 조선 시대 괘불탱으로 당나라에서 건너와 그렸다는 불화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가뭄이 극심할 때 이 괘불을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는 영험담이 구전되고 있다. 실제 2010년경에 야외에서 북장사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낸 이력이 있으며, 이후 비가 내렸다고 한다. 　

   가뭄에 대한 영험력 있는 설화는 땅 끝 마을 해남에 위치한 미황사도 으뜸이다. 이 절에는 10m가 넘는 괘불탱(1727년)이 있다. 이 미황사 괘불도 가뭄이 심할 때 걸어놓고 기우재를 지내는 와중에 비가 갑자기 내렸다는 영험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화면 중앙에는 강림하는 석가모니를 크게 그리고, 하단에는 용왕과 용녀가 그려져 있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1997년에 경복궁 경회루 연못의 물을 빼고 청소하는 도중에 청동제 용이 발견되었다. 용 몸체의 길이는 146.5㎝이고 무게는 66.5㎏에 이르는 규모로,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 접대나 궁중 연회 장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1592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후 고종 4년(1867)에 재건하였다. 그 이후 경회루는 화재 방지를 위해 물을 다스리고 비를 내리는 용 조형물을 연못에 넣었다고 하는데, 그게 발견된 것이다.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가뭄 끝에 장마가 찾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장맛비가 감로수와 같다. 인디언들의 기우제나 우리 선조들의 기도와 신비로운 영험담들은 모두 정성스러운 믿음이 대상을 향해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