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초기 행보로 화제가 만발이다. 특히 첫 외부 공식일정이었던 인천공항공사 방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방문에서 그는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고 공공기관 평가에서 정규직화 지표를 중요하게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공항공사는 곧바로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화를 추진하였고 다른 공공기관들도 잇따라 정규직화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것이 신호탄이 된 것일까? 민간부문으로도 이 흐름이 번지고 있다. 에스케이 그룹, 롯데 그룹, 농협 등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초기 행보 하나만으로 우리 사회 전체를 짓누르던 경제문제가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신호탄이 이처럼 경제의 방향을 바꾼 사례는 많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는 취임 후 노사 간의 분쟁에 최종 판결을 내리는 연방노동위원회 위원장에 도널드 닷슨을 지명하였다. 그런데 닷슨은 위원회에 제소된 사건들을 최대한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사실상의 태업이었고 연방노동위원회의 기능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닷슨 이전 연간 1051건이었던 판결 건수는 닷슨 이후 602건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것이 신호탄이 되었다. 분쟁이 잘 처리되지 않는다는 이 신호를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을 마구 공격해도 좋다는 정부의 허락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서막이 되었다. 　

   인천공항공사 방문 화제 만발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부문으로
   정규직 전환 확산의 단초 돼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지려면
   노동자와 기업 힘 대등해져야
   노동자의 교섭권리 보장 급선무 　

   서로 반대이긴 하지만 이들 두 사례는 모두 정부가 직접적 개입 없이 단지 신호만으로도 경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경제문제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소위 주류경제학에서는 경제현상을 인간의 도덕적 의지와 무관한 자연현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도 구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해법을 미룬다. 스펙을 쌓고 경쟁력을 높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사례는 경제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임을 말해 준다. 즉 경제문제는 인간들 사이의 합의를 통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인위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반영하고 이 관계를 균등하게 바로잡는 것이 해법이다. 그것은 곧 민주화를 의미한다. 촛불 민주주의가 낳은 대통령이 비정규직 해결의 신호탄을 쏜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관계의 민주화는 동등한 두 개의 권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 해법은 궁극적으로 이들 두 권리의 합의에 의해 완성된다. 정부의 신호는 해법의 완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직은 멀어 보인다. 당장 두 권리의 한쪽 당사자인 경총이 '획일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나섰고 이에 동조하는 학자들도 이 조치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동등한 두 권리가 충돌할 경우에는 힘이 사태를 결정한다!' 그래서 두 권리의 힘이 대등해야만 균등한 관계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조차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할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고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광화문 고공농성과 전교조의 불법화,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이 그것을 대변한다. 결국 대통령의 신호탄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것의 전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가 자신들의 관계를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유럽의 사회협약(네덜란드, 스웨덴)이나 단체교섭법(독일)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가 새롭게 구상하는 노사정위원회의 최우선 과제는 이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