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환 한국어문학과 교수

   사람의 얼굴에 털이 없는 이유는 보온보다 더 절실한 것이 소통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털 없는 얼굴 덕분에 표정으로 표현을 확장하며 자신의 인상을 만들고 타인과 소통했다. 그래서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타인을 판단하고자 얼굴 해석에 치중하였고, 인상을 보고 가장 빠른 시간에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렇게 인상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을 체계화한 것이 관상학이다. 관상은 인류 문명사를 통틀어 줄곧 번성했으며, 오늘날에도 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 초두 효과(primacy effect)라 하여 첫인상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히포크라테스가 모두 관상학자였다는 사실은 현대 심리학에서 인간을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로 바라보는 관점과 밀접하다. 인지적 구두쇠란 인간은 본디 생각하는 데 인색하여 최소한의 노력만으로 판단한다는 뜻이다. 선거에서 후보의 인상만으로 평가하거나 신입사원의 능력을 출신 학교로 예상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인지적 구두쇠 심리 때문이다.　

   고정관념, 선입관, 편견 등도 우리가 마주하는 대상이나 사람을 항상 숙고 끝에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 나타나는 인지적 구두쇠 현상이다. 주변의 모든 인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면 우리 두뇌는 과도한 자극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때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관상이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골상학, 인상학 등 명칭만 다를 뿐 관상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의 오랜 습성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와 생애를 함께할 배우자나 벗, 사회적 운명을 함께할 동료, 믿고 따라야 할 윗사람을 선택해야 할 때, 혹은 공동선을 추구하며 국가를 이끄는 대통령을 뽑아야 할 때 과잉 일반화의 위험을 안고 관상으로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흔히 겉모습에 나타난 인상에 현혹되지 않고, 그 사람의 속내인 심상(心相)으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열 길 물속보다 들여다보기 어려운 것이 사람 속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 편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공자는 그가 행동하는 바를 살펴보고,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연유를 관찰하고, 그렇게 행동하며 편안해 하는지를 살펴 헤아리면 어떤 사람이든 자기 본모습을 숨길 수 없다고 말한다.
공자가 조언하는 첫 번째 방법은 시기소이(視其所以)이다. 공자는 외모와 옷차림, 사회적 지위가 어우러진 인상과 그 사람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그가 행동하는 바를 보라고 한다. 시기소이(視其所以)에서 시(視)는 그저 보는 것이 아니다. 한자에서 '보다'는 뜻은 견(見), 간(看), 시(視), 관(觀) 등으로 각각의 쓰임새가 다르다. 눈을 감지 않고 뜨면 그저 보이는 것이 견(見)이고, 영어로 'see'에 해당한다. 손을 얹고 멀찍이 보는 것은 간(看)이며 영어로 'look'이다. 우리가 살펴볼 때 시찰(視察)이란 말은 써도 견찰(見察)이나 간찰(看察)이란 말은 하지 않듯 시(視)는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살펴보는 것이다. 상대의 지위와 인상과 말에 미혹되지 않고 사람의 본모습을 알아보려 한다면, 오로지 과거와 지금의 행동을 살펴보는 강철 같은 인내가 필요하며, 그것이 시기소이(視其所以)이다.　

   다음 단계로 공자는 관기소유(觀其所由), 즉 그렇게 행동하는 연유 혹은 동기를 보라고 말한다. 관기소유(觀其所由)의 관(觀)은 꿰뚫어 보는 것을 의미한다. 시찰(視察)이 두루 살펴보는 것이라면, 관찰(觀察)은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보려는 자의 강철 같은 인내심에 대응하는, 보이려는 자의 철저한 자기 위장은 곧잘 우리 눈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공자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동기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윗사람에 대한 헌신의 동기가 존경이 아니라 승진이라면, 윗사람의 힘이 사라질 때 헌신도 사라진다. 벗과의 교유가 우정이 아니라 관계를 통한 이익 추구라면 이해관계가 없어질 때 멀어진다.　

   세상 어디에든 행동을 꾸미고, 그 행동의 동기마저 교묘하게 위장하는 능란한 처세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걸러내고자 공자는 최후의 관문을 마련해 둔다. 찰기소안(察其所安),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며 편안해 하는지를 살펴 헤아리라고 조언한다. 본모습을 숨기려 동기마저 꾸며 행동하는 자는 어느 지점 혹은 어느 순간 편안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다. 사람의 본모습은 이렇게 아주 짧은 순간 드러난다.　

   대통령 선거도 결국 사람을 알아보고 선택하는 일이다. 이미지와 말이 만들어 낸 인상을 경계하여 오직 행동을 시(視)하고, 그 행동의 동기를 관(觀)하며, 그렇게 행동하며 편안해 하는지를 찰(察)한다면 인언수재(人焉廋哉), 어찌 본래 모습을 숨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