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권 사학과 교수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이 명제는 과거가 현재를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현재를 보는 관점에 따라 과거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역사인식에서 과거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상식이 된 이러한 역사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올바른 역사교과서'라 자칭해왔던 '국정교과서 프로젝트'이다. 지난 3월 17일 법원이 문명고 연구학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여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에 대한 사망을 선고하였다. 국정교과서를 사용할 학교가 하나도 없게 됨으로써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프로젝트는 대실패의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실패의 원인은 졸속 집필로 인한 내용의 부실도 컸지만, 애초 명분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무모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은 진즉에 판명이 난 터였다. 　

   박근혜 정부는 왜 국정교과서 문제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일까? 당시 정부가 국정화 추진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접 언급을 빌리자면, 언필칭 국론분열과 역사인식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기존의 역사교과서에 종북 좌파의 딱지를 붙여 검정 교과서제도를 폐지하고, 유신시대의 국정교과서 제도로 돌아가려 했다. 　

   돌이켜보면 '올바른 역사'에 대한 기준을 정치권력이 정하고 국민에게 이를 따르라고 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독재적인 발상이지만, 집권세력과 일부 어용학자가 앞뒤 가리지도 않고 대통령이 제시한 '올바른 역사'의 저술 방침에 맞장구를 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로매진하였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선언한 지 1년 반도 안 되어 정부가 집필 제작한 국정교과서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못한 채 박근혜 정부와 함께 탄핵당하고 말았다. 　

   당시 교과서 집필과 역사교육의 당사자인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 그리고 일선 학교의 교사들이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반대하였고, 또 많은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론분열 방지와 '나라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 아래 무슨 주술에라도 걸린 듯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사필귀정'이란 말 그대로 학계와 교육계 안팎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화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일방통행적 국정 운영방식과 소통의 부재로 세인들로부터 '불통'이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이러한 방식의 국정운영이 누적된 결과로 급기야 '촛불혁명'의 탄핵정국에 이르게 되었지만, 이제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도 그러한 국정운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촛불 탄핵과 국정교과서 탄핵은 오래전 이미 한 몸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박근혜식 국정운영의 단초는 이미 2012년 대선후보 시절 차기 정부의 핵심 가치로 국민(대)통합을 내세웠을 때부터 나타났다. 국민통합을 선의로 해석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를 통한 국민적 화합의 도모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지향한 국민통합은 정치적 반대파의 배제를 철저히 배제했던 유신시대의 이른바 '국론통일'을 연상케 하였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국가권력의 힘으로 다양한 국민의 사고를 하나의 사고 체계 속에 가두려는 것은 파시트적 발상의 본질이다. 이를테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 한나 아렌트는 그가 관찰한 유대인 학살의 전범자인 아이히만이 악의 화신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의미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도출해냈다.
문제는 그 아이히만에게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자신과 타자와의 차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가 저지른 범죄만큼이나 소통이란 불필요한 것이었다. 블랙리스트와 같은 불통 정책은 차이를 지우려 할 때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이다. 　

   개인 간의 의견 차이는 당연시 되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과 다원성이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당대의 사회집단을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소인배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군자로로 구분하였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같으면서 불화하는', 즉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화합하지만 서로 다른', 즉 서로 간 차이를 인정하면서 화합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상대한 관용도, 상대와의 화합도 가능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동이불화'가 아니라 '화이부동'이어야 할 것이다. 화이부동의 세계야말로 대동(大同)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촛불혁명'의 지향점으로서 화이부동의 대동세계를 꿈꾸어 보는 것은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