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두 정부를 이어온 경제의 숫자놀음도 함께 끝장이 났다. 이명박 정부의 747과 박근혜 정부의 474 공약이 바로 그것이다. 비슷한 숫자로 헷갈리게 하는 이들 공약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숫자가 하나 있다. 선진국 기준이라는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 두 사람 모두 국민소득이 득표에 효과가 높다고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덕분인지 두 사람 모두 당선되었지만, 그것은 허무맹랑한 공수표였다. 두 대통령의 연이은 공약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2016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7000달러 선에 그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앞당겨진 대선에서 후보들은 아마 다시 조자룡 헌 칼 쓰듯 국민소득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앞선 두 대통령의 선택에서 이미 치른 쓰디쓴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국민소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개념을 둘러싼 신기루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 주류경제학 교과서에는 국민소득이 증가해야(경제가 성장해야) 잘살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개 당연하게 여기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많은 단서가 붙어 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 말은 맞지 않는다. 모두 다룰 수는 없고 간단한 몇 가지라도 지적해 보고자 한다. 　

   국민소득 늘면 과연 잘살까
   양극화 심하고 가계 비중 낮으면
   일반 국민은 잘산다 할 수 없어 　

   경제의 질적 개선에 초점 맞춘
   '국민행복지수'에 주목할 때
   대선 후보들 관심 가져 주길 　

   먼저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부도 늘어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국민소득은 가격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교환되는 부만 계산된다. 교환되지 않는 것은 계산되지 않는다. 가령 집에서 주부가 차려준 식사는 계산되지 않지만, 식당에서 사 먹는 식사는 계산된다. 심청이의 동냥젖도 이웃의 인심이면 계산되지 않지만 돈을 주고 사야 하면 계산된다. 그래서 국민소득을 높이려면 주부들이 파업하고 이웃 사이에도 모든 것을 돈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부의 크기가 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음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모두 잘살게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국민소득은 사회 전체의 평균일 뿐이다. 양극화가 심하면 국민소득이 높아도 대다수 국민은 그보다 훨씬 낮은 소득밖에 얻지 못한다. 또 한 가지가 있다. 국민소득은 크게 가계와 기업이라는 두 경제 주체에게 분배된다. 전자를 임금소득, 후자를 자본소득이라고 부른다. 후자보다 전자의 비율이 낮으면 국민소득이 증가해도 기업만 부유해질 뿐 일반 국민은 잘살 수 없다. 이 비율은 북유럽 국가가 높고 미국과 우리나라는 낮다. 그래서 미국은 독일보다 국민소득이 높지만, 일반 국민은 독일이 미국보다 잘산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정부 내내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렸지만, 국민 대다수는 '헬조선'에 허덕였다.　

   국민소득의 이런 한계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국민소득 무용론이 나온 지 오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민행복지수라는 것이다. 경제의 양적 성장보다 질적 개선을 중요하게 보는 관점이다. 실제로 이 지수를 정책목표로 삼는 부탄 같은 나라는 국민소득이 낮아도 삶의 질은 세계 최고로 손꼽힌다. 사실 국민소득의 척도인 교환가치는 노동시간이라서 국민소득의 증가는 사회 전체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피로사회를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경제일까? 이번 대선에서는 제발 성장이나 국민소득을 놓고 숫자놀음을 하는 후보가 나오지 않았으면 바란다. 참고로 2015년 연간 노동시간은 독일이 1371시간, 미국이 1790시간, 한국이 2113시간이었다. 우리 국민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어 할까? 그것을 모르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