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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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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오후 3시 퇴근 운동이 벌어졌다. 남성노동자보다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64%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후 3시 이후의 노동은 사실상 무급노동이라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 여성의 날을 109번째 맞았던 날이었다. 그런데 차별(여기에서는 임금의 차별만 보도록 한다)이 왜 문제가 되는가? 자본주의의 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같은 것을 주고받는 교환에 근거한 경제체제라는 점에서이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날이 제정된 지 한 세기가 넘도록 아직 차별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차별을 해소할 방법은 무엇인가?
차별의 역사적 기원에서 단서를 엿볼 수 있다. 인류는 처음 모계사회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차별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모계사회가 가부장 사회로 변화한 이후에도 자급적인 경제구조 때문에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차별은 비교를 전제로 하지만 자급구조는 서로 비교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은 자본주의와 함께 나타났다. 자본주의의 모태인 수공업 부문의 노동자들은 평생 숙련을 쌓은 성인 남성들이었다. '직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숙련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에 이들의 임금은 비교적 높았다.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차별'
이윤 극대화라는 명목 속에서
여성노동자 임금 낮게 책정해
한 사람 작업 쪼개 여럿 나누면서
임금 차별 훨씬 다양해져
여성 중심 오후 3시 퇴근운동은
100년 넘은 자본주의 변혁 지향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 원리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산출을 얻어 그 차액을 최대화하는 데에 있다. '이윤 극대화 원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연히 임금을 낮추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기계가 도입되었다. '산업혁명'이라고 알려진 사건이다. 기계는 숙련을 제거하여 숙련이 없는 여성과 아동을 동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똑같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새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기존의 성인 남성노동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훨씬 낮은 임금이 지급되었다. 이것이 차별의 기원이다. 오늘날 대학에서 비정규트랙의 명목으로 똑같은 강의를 담당하는 신임 교수에게 기존 교수들보다 훨씬 불리한 임금과 고용조건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11년 이것을 더욱 강화하는 새로운 수법이 도입되었다. '테일러 복음'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한 사람의 작업을 잘게 쪼개어 여러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다. 노동은 극단적으로 단순해졌고 임금을 더욱 낮출 수 있는 빌미가 제공되었다. 노동자는 고숙련과 저숙련, 사무직과 생산직,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등 무수히 많은 기준에 따라 차별을 받게 되었다. 이들 차별은 모두 임금을 낮추어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부르는 자본주의의 원리다.
100년이 넘도록 여성차별이 해소되기 어려운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여성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겨냥한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이런 차별이 자본주의의 숙명이라는 점을 토로했다. 그래서 이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딜레마이다. 동등한 교환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차별에 의존하는 구조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3시 스톱 운동이 요구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사실 자본주의 자체의 변혁을 지향한다. 이 원칙을 도입한 나라들이 주로 유럽의 복지국가들이라는 점은 그것을 암시한다. 차별을 극대화한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면서 자본주의가 기로에 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침 노동개혁을 앞세우며 차별을 부추기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다. 우리 사회도 3시 스톱 운동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한 것일까? 촛불 이후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함께 교차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