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기차를 타러 역에 갔다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겪는 민망한 일이 있다. 남자화장실의 청소를 여성미화원이 하고 있어서 자주 마주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차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백화점, 관공서, 병원 등 어디에서나 겪는 일이다. 이 민망한 일을 예사롭게 보기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비단 화장실 청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소위 '갑질 문화'와 동일한 맥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와 인권을 분리하고 전자가 후자를 훼손하더라도 그것을 묵인해 주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런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성미화원의 남자화장실 청소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갑질 문화'
   효율성 따지는 영미자본주의는
   노동에 따른 인권침해 고려 안 해 　

   스웨덴 등 북유럽 자본주의에선
   인간 존엄성과 노동권 함께 반영
   이들의 결합이 진정한 경제민주화
   북유럽에 트럼프가 없는 이유기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고 알려진 <맨큐의 경제학>에 그 답이 적혀 있다. 경제학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경제현상을 마치 자연현상을 분석하듯 중립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가치중립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참고로 사회문제는 크게 윤리와 정치 등으로 이루어진 '상부구조'와 경제로 이루어진 '토대'의 두 범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경제학은 이들 두 범주 가운데 후자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를 다루는 중립적 기준으로 이 교과서는 '효율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비용에 있어서 남성미화원에 비해 여성미화원의 효율이 높고(임금이 낮고) 그렇기 때문에 남성화장실에서 여성미화원이 침해당해야 하는 인권 따위는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문제에서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이런 관점은 우리 노동법에도 똑같이 반영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파업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나 사용자가 정치파업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노동조합의 파업이 경제적 조건만을 대상으로 삼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을 노동문제와 분리해야 한다는 위의 교과서 정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런 관점을 지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관점은 말 그대로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학에는 가치판단에 대한 두 개의 관점이 나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다. 전자는 오스트리아학파의 막스 베버로 대표되고 미국과 영국의 경제학이 주로 따르고 있다. 다른 하나는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뮈르달로 대표되고 유럽의 제도주의 경제학이 주로 따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이란 이들 가운데 하나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미형 자본주의를 반영하는 관점일 뿐이며 북유럽 자본주의는 그것과 다른 관점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남성화장실을 여성미화원이 청소하는 사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노동과 인권의 분리 여부는 자본주의의 성격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에서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권을 똑같이 중요한 권리로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엄성이 침해당한 상태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시대 우리에게 야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미국의 트럼프가 북유럽에서는 보이지 않는 까닭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에서 사회주의가 처음 등장한 까닭은 혁명을 통해 획득한 인권이 자본주의라는 경제구조를 통해 무력화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정치적 민주주의가 경제적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로 알려진 정당들의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인권과 노동의 결합,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경제민주화이고 동시에 야만으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