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박병원 경총 회장이 문화일보 시평에 올린 영화평이 화제가 된 모양이다. 문제의 영화는 영국의 노장 감독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내용은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한 노동자가 복지제도의 장벽에 부딪히며 겪는 갖가지 어려움이다. 박 회장은 복지제도의 공적 성격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삶을 공공의 손에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래서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영화평이 화제가 된 까닭은 켄 로치가 우리나라에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등으로 잘 알려진 진보 성향의 감독이고 따라서 박 회장의 평이 감독의 메시지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을 거꾸로 읽은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사실 박 회장의 영화평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정반대의 두 개가 나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이끄는 경총이 자본가들의 5개 이익단체 가운데 특히 노사관계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그는 정확하게 자본가들의 관점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극소수가 자본 독점한 세상에서
   자본 독점한 이들의 투자 없으면
   노동자들은 실업, 빈곤 나락으로 　

   '사회적' 빈곤 원인은 자본주의
   실업, 빈곤이 개인 책임 아닌 이유
   이를 해결하는 복지제도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예전에 폐기됐을 것　

   그래서 이참에 복지문제의 두 견해를 한 번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최근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되어 오세훈 서울시장의 퇴진, 교육감 선거, 총선과 대선 등에 모두 중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먼저 오해하지 말 점은 박 회장도 복지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비용을 세금으로 내고 사는 것은 정상적인 원칙'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박 회장이 말하는 이런 복지는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하던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시의 경제는 자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업이 중심이었다. 빈곤은 자연 때문이었고 그래서 복지는 자연을 관장하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교회가 담당했다. 교회는 모든 생산자로부터 십일조를 거두어 이를 복지에 활용했다. 오늘날 십일조는 국세로 바뀌었고 교회는 국가가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이런 복지가 아니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어려움은 실업과 관련된 것이다. 실업은 하나님(자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의 생산에 필요한 두 요소(노동력과 자본) 가운데 자본이라는 요소를 극소수가 독점하는 사회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본을 독점한 이들이 투자하지 않으면 노동력만 가진 대다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실업과 빈곤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빈곤은 앞의 '자연적' 빈곤과 구분하여 '사회적' 빈곤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본주의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10대 재벌이 550조 원의 자본을 수중에서 놀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어려움과 '헬조선'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실업으로 인한 빈곤은 자본주의라는 사회제도가 만들어 낸 것이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이다. 박 회장은 자본주의 이전의 복지문제만 생각하고 있을 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복지문제는 간과하고 있다. 만일 자본주의가 그 책임을 회피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자본주의는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상지 영국에서 바로 이런 복지제도가 만들어진 까닭을 박 회장은 모르는 모양이다. 복지제도가 없었다면 영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수명을 다했을 것이다. 결국, 박 회장의 생각은 사실상 자본주의를 폐기하자는 위험한(!) 발상과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이 두 개이고 이 둘을 모두 균형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