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지난 12월 22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조직형태 변경 투표를 통해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대기업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은 쉽지 않은 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2003년 조직형태 변경에 실패했다가 2006년 재시도를 통해 어렵게 산별노조로 전환한 사례가 그것을 말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가 커서 이들이 함께 교섭하는 산별노조가 대기업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감소시킬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조직형태 변경에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 산업 전반의 위기로 인한 고용불안을 가장 큰 이유로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고용위기와 산별노조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기업 내부에, 다른 하나는 기업 외부에 조직된 것이다. 전자를 기업별 노동조합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산업별 노동조합(줄여서 산별노조)이라고 부른다. 이들 조직형태의 차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교섭구조에서 전자는 사용자가 한 사람으로 독점적 지위를 갖지만, 후자는 사용자가 다수로 경쟁적 지위에 처한다. 당연히 전자에 비해 후자의 교섭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섭력만으로 경기침체 때문에 발생하는 고용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경기침체는 단체교섭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외부에 조직된 산별노조 고용 위기 등 산업 위기 대응 독일 등 산별교섭 제도로 보장 우리나라는 기업 내부 교섭만 인정 헬조선 등 문제는 기업 외부의 일 산별교섭 제도화로 실마리 찾아야 　

   그래서 산별노조의 참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어 임금을 받고 노동을 제공해서 먹고 산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이해는 고용, 임금, 노동조건의 세 가지로 압축된다. 여기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은 개별 기업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 노동자들은 중소기업보다 더 높은 임금과 더 좋은 노동조건을 얻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고용은 개별 기업에서 해결할 수 없다. 현재의 조선 산업처럼 산업 전체가 위기를 맞으면 채권단의 요구나 구제금융의 조건에 따라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그것은 개별 기업의 범위를 벗어난다. 노동조합이 기업 외부에 조직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이제 조직 전환을 통해서 고용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법은 기업 내부의 교섭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 전환은 아직 해답의 완성이 아니라 해답의 출발점일 뿐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업 외부 문제를 교섭할 수 있는 산별교섭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외국의 경우 산별교섭은 법률(독일, 네덜란드)이나 사회적 협약(스웨덴, 덴마크)에 의해 제도화되어 있다. 물론 이런 산별교섭 제도화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1987년 처음 민주노조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실 '헬조선'은 1997년 이후 우리 노동문제가 실업과 비정규노동 등 기업 외부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는 데 반해 이들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산별교섭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섭과제와 교섭구조의 불일치가 그 원인이다. 그래서 산별교섭 제도화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인 '헬조선'을 해결할 열쇠이기도 하다. 마침 촛불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어 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골리앗 투쟁'을 통해서 우리 민주노조운동의 새 역사를 열었던 노동조합이다. 현대중공업의 산별 전환과 함께 우리 민주노조운동의 '시즌 2'가 열리길 간곡히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첫발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