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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언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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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인이나 소설가라면 마치 그가 자신들과는 다른 별세계에 사는 신비한 존재인 양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한 수 접어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문인은 시정의 갑남을녀(甲男乙女)나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못지않은 속물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못한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는 당대의 권력자인 최씨 정권하에서 무인들에게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태연히 아부를 일삼았으며,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함께 조선 삼대 시가인 중의 한 명인 송강 정철은 당파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인의 우두머리로 잔혹하게 정적을 짓밟고 고문한 인물이었다.
문인은 별세계의 신비한 존재?
속물이거나 위선적 인물 많아
진정한 시인은 매명 꺼리고 살아
사정은 서양도 마찬가지라 에즈라 파운드는 파시스트였고, 바이런은 천하의 바람둥이였으며, 도스토옙스키는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도박꾼이었고, 오스카 와일드는 어린 남자 애인을 꼬드겨 도피행각을 벌인 파렴치범이었다.
흔히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면 티끌 세상을 멀리한 채 자연을 벗 삼아 고담준론에다 술과 시와 거문고로 소일하는 신선과도 같은 현인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완적(阮籍)은 술만 있다 하면 군대 취사장까지 찾아가 입대를 자원했던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왕융(王戎) 같은 자는 어찌나 인색했던지 자기 집에서 나는 맛난 오얏을 팔아 재미를 톡톡히 보았는데 누가 그 씨를 심을까 우려한 나머지 내다 파는 열매는 모조리 송곳으로 구멍을 뚫었다[鑽核]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인들이 대부분 은하수를 마주하고 둥근 보름달을 상대로 술잔을 기울이는 멋들어진 자이거나 혹은 할 말 많은 자신들을 대신해 시원하게 사자후를 토해 주는 자로 착각한다. 시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머리에서 짜낸 알 듯 말 듯 한 현학적인 비유 따위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한시, 특히 금체시 하면 으레 이백과 두보를 최고로 치며, 이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이라 경칭한다. 그중에서도 두보는 리얼리티와 애국애민의 시인으로 존경받아 왔으며, 조선 성종 같은 호문지주(好文之主)는 <두시언해>의 편찬을 국가적 사업으로 삼을 만큼 그를 존숭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현대 중국 비평계의 거장 궈모뤄(郭沫若)는 이백과 두보의 시구 하나하나를 세밀히 분석한 다음, 두보를 "영락한 채 죽어간 자의 전형" 혹은 "출세에 연연하는 속물"로 평가하며 이백도 약간 개혁적이긴 하나 "현실에서 떠도는 분속파(憤俗派)"에 지나지 않는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한시 중에는 유독 은일시(隱逸詩)가 눈에 많이 밟힌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은일을 가장한 사대부들의 위선적 멋 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수양대군을 꼬드겨 조카를 참살하고 왕위에 오르게 만든 천하의 모사꾼 한명회 같은 자도 한강변에 압구정을 짓고는 현판에다가 강호로 돌아가겠다는 은둔의 뜻을 그럴듯하게 써 붙였다. 그러나 끝내 강호로 돌아오지 않는 정자의 주인을 두고 한 선비는 "멱 감은 원숭이"라고 그 철면피함을 풍자했다.
진실로 은둔을 택한 사람은 지리산 깊은 골짝이 아니라 국제시장 뒷골목에서 장사치들과 더불어 싸움질하고 껄껄거리며 남은 생을 영위한다. "내 산에서 세상을 깔보고 고고하게 삽네" 하는 매명(賣名)을 꺼리기 때문이다. 진정한 시인은 세상 이치를 다 깨달았다는 듯이 요설(饒舌)을 내뿜으면서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자들을 혐오해 붓을 끊는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걸려 낙향했다가 아예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어 버린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의 무언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예전엔 비바람에 놀랐었지만(風雨驚前日)/지금은 문명세상 등지었다오(文明負此時)./지팡이 하나 짚고 우주 떠도니(孤遊宇宙)/시끄런 소리 싫어 시도 끊었네(嫌鬧幷休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