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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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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1200조원, 공공부문 부채가 1200조원, 기업부채가 2300조원에 달하면서 부채 총액이 5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부채 증가를 막지 못하면 경제는 파국을 맞는데 우리는 이미 1997년에 그것을 겪었다. 부채 문제는 자본주의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고 정부의 헛발질은 이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 있다. 한국 자본주의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부채 문제가 그 징후이다. 가계부채가 1200조원, 공공부문 부채가 1200조원, 기업부채가 2300조원에 달하면서 총액이 5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총생산의 3배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채 증가를 막지 못하면 경제는 파국을 맞는데 우리는 이미 1997년에 그것을 겪었다. 정부의 인식과 정책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부채 문제는 자본주의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고 정부의 헛발질은 이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 있다. 자본주의는 공급이 수요에 비해 항상 과잉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적인 경기변동이 그 증거이고 경기침체가 수요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이런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있었던 까닭은 두 가지 해결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공간적인 방법으로 부족한 수요를 해외시장(식민지)에서 찾는 것인데 이것은 20세기 초까지 효과를 발휘하였다. 하지만 지구는 한정되어 있고 식민지 쟁탈은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막을 내렸다. 다른 하나는 시간적인 방법으로 미래소득을 앞당겨 쓰는 것이다. 바로 부채를 늘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소득을 고갈시켜 결국 미래가 닥치면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를 더욱 키운 상태로 파국을 부른다. 그것은 불일치를 미래로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1929년 위기가 그것을 증명하였다. 케인스는 이 부채를 잠시 정부에 떠넘기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정부의 미래소득은 조세인데 정부부채로 부족한 수요를 메워 경기를 살리면 조세를 늘려 부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소비의 한계가 있었다. 인간은 무한히 소비를 늘릴 수 없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두 대를 동시에 탈 수 없는 생물학적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케인스의 실패 이후 부채를 늘리는 고전적인 수법이 다시 부활하였다.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하지만 부채가 불일치를 미래로 미루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2008년 다시 확인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험이다. 부채 증가는 공급 과잉의 증거이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이다. 해법은 단 하나, 공급을 억제하고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150년 전 마르크스가 알려준 힌트이다. 공급 억제는 노동시간 단축에, 수요 증가는 사회적 수요(안전망, 복지)의 확충에 있다.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의 특징을 이루는 요소이다. 2008년 위기가 이들 국가를 비켜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와 반대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였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는 모두 성장에 매달려 공급 과잉을 더욱 심화시켰고(저금리, 고환율, 감세, FTA) 노동의 희생을 강요하여 소비를 더욱 위축시켰다(저임금, 비정규노동, 노동개혁). 당연히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엇박자를 낸 조선, 해운 업종의 동반 몰락, 투자처를 못 찾은 유동성의 부동산 투기와 기업의 엄청난 내부 유보(10대 재벌의 550조원) 등이다. 소비를 늘린답시고 코리아 세일 페스타 같은 행사를 벌였지만 소비는 소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소득 증가 없이 수요를 늘리는 방법은 부채뿐이며 지금의 사태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연히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성장(경상수지 흑자)의 부족이 아니라 과잉에 있으며 노동의 희생이 과도한 데에 있다. 금리, 조세, 최저임금의 인상, 비정규직 규제, 노동시간 단축, 사회적 안전망 확대 등이 공급의 억제와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는 올바른 정책이다. 선진국들의 사례가 그것을 알려준다. 아베의 “일본 1억 총활약 플랜”(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 프랑스의 부자 증세, 스위스, 핀란드의 기본소득 논의, 독일의 최저임금 제도화 등이 모두 그것이다. 전부 우리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이들 나라가 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이미 실패한 케인스, 신자유주의 경제학에만 눈이 팔려 있는 까닭이다.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마르크스의 정본이 하나도 출판되지 않았고 서울대학교에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하나도 없는 외눈박이 시야로는 부채 증가의 의미를 읽을 수 없다. 파국을 막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경제학의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