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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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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예민해졌다. 미세한 흔들림에도 민감해졌다. 자연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의 경이로움과 무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이런 에너지가 재해현상으로 나타날 때 엄청난 피해를 준다. 지난 12일 경주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은 가장 강력한 진동이었고 괴음조차 내뱉었다. 강도 높은 여진을 동반하면서까지 말이다. 이번 강진과 여진으로 인해 경주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역사적 문화도시 경주를 비롯한 영남권은 쇼크에 휩싸였다. 게다가 지진의 원인이 되는 활성단층이 한반도 곳곳에 450개 이상 퍼져 있다는 전문가 진단과 언론 보도로 한반도 전역이 지진 안전국에서 불안국이 되었다.
그러나 경주는 지진의 역사를 품고 견뎌온 천 년 고도이다. 땅의 요동은 이번만의 일은 결코 아니다. 지진에 대한 정보 콘텐츠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문헌자료 외에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고려 묵서지편에서도 이미 확인된다. 예기치 않은 재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경주지역 문화재는 천 년 이상의 시간을 도도하게 유유히 버텨왔다. 그뿐만 아니라 방향에 대한 암묵적인 메시지도 던지고 있는데 말이다.
경주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건립되었고, 이어 선덕왕 645년에 9층 목탑이 완성되었다. 경주 벌판에 우뚝 솟은 황룡사 목탑은 고려 1238년 겨울에 몽골의 침입 병화로 황룡사 가람 전체가 불에 타면서 불행하게도 전소되었다. 그러나 소실되기 전까지는 수차례의 낙뢰와 지진에도 결코 붕괴되지 않았다. 자연재해의 역사와 함께 수리를 거듭하며 그 수많은 시간을 버텨왔던 것이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역시 지진의 역사와 함께한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1966년 석가탑 해체 수리 때 2층 탑신부 사리공 바닥에서 먹글씨로 쓴 묵서지편(墨書紙片) 뭉치가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묵서지편은 1024년(현종 15년)과 1038년(정종 4년)에 각각 적은 탑중수기와 중수형지기로 전문가들에 의해 다각도 분석이 이뤄졌는데, 지진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다. 1036년에 일어난 강진으로 석가탑이 붕괴 직전이었고, 이에 버팀목으로 받쳐 오다가 103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말미암아 동서탑 모두 수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한 '5센티의 기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는 남산의 넘어진 마애불도 주목할 수 있다. 거대한 바위들이 널려 있다는 남산 열암곡의 넘어진 마애불은 한때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6미터 이상의 바위덩어리에 새겨진 마애불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쳐진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시대 8~9세기 양식으로 보이는 이 마애불은 6.0 이상의 강력한 지진으로 파손되어 쓰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외에도 석굴암의 천정 개석이 3조각으로 파손된 것을 지진의 여파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감은사지에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 울산에 바닷물이 육지로 들어왔다는 인조실록의 기록 등은 현대판 쓰나미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땅의 요동과 소리에 모두들 예민해졌다. 사람들의 불안을 맥놀이하듯 퍼져나가는 괴담도 가히 수준급이다. 급작스럽게 재해를 당하면 냉철함을 잊어버린다. 논리적인 사고도 결실한다. 현대과학에만 오로지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좌충우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 역사기록을 통해, 그런 강진 속에서도 버텨온 건물 구조를 역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대비해야 한다. 이번 경주 강진 발생 이전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지진 발생에 대비한 매뉴얼이나 우려되는 유물들을 고정시키는 작업에 미리 임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린다. 이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개미같은 사전 대비책이 심리적인 안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경주지역 문화재들은 재해의 역사와 더불어 천 년이나 넘는 세월을 견디면서 오늘까지 유유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첨성대의 안전 점검도 중요하지만, 치밀하게 짜여진 돌덩어리의 내진설계 원형을 배워야 한다. 우리들의 목전에 존재하고 있는 감은사 동서탑의 진면목을 알아야 한다. 천 년 이상이나 땅의 요동에도 붕괴되지 않고 버텨온 문화재나 건축물들이 결구가 치밀한 목조나 석조 건물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문화재의 생명력은 가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 긴 시간을 견뎌온 문화재는 단순히 보존 차원만의 존재가 아니라 많은 이야기거리를 품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지금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인가? 원형을 제대로 읽어내야 하지 않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