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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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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이 의심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제대로 확립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0년도 채 지속하지 못하는 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릴 정책 실현의 기회가 있겠는가? 당 내부의 소그룹들이 의견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정체성을 확인하는 강령 논의가 있을 리도 없다.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 얼핏 든 느낌은 뜬금없다는 의구심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개정안에 ‘노동자’ 단어가 삭제되면서 당 대표 후보들이 문제를 제기한 조그만 소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더민주가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당이었던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정체성에 ‘노동자’ 개념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었다.
첫번째 의문은 더민주가 자신의 강령을 차별적으로 내세운 적이 없었던데다 새누리당의 선거를 지휘한 분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여 지난 총선을 치르면서도 별다른 해명이나 고민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당의 정체성은 선거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새누리당과 구별되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었다. 실제로 더민주의 강령을 들여다보면 새누리당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둘 모두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강령의 정체성에 기대어 유권자가 새누리당 대신 더민주를 선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현재 우리 노동문제의 핵심인 비정규노동이 더민주의 전신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비정규노동을 공식화하여 대폭 물꼬를 튼 ‘파견법’은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제정되었고 이 법에서 그나마 있던 보호조항인 ‘고용의제’가 삭제된 개정안은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등의 불가피한 요인도 있었겠지만 ‘노동자’의 정체성을 얘기하려면 이런 과거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더민주의 정체성이 새누리당과 다름없고 ‘노동자’의 정체성이 전혀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민주는 분명 새누리당과 구별되는 면을 가지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그나마 온정적인 정당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정체성이 의심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제대로 확립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더민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정치 현실 전반이 정체성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더민주가 정말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의사가 있다면 차제에 정면으로 이 문제와 마주할 필요가 있다. 유럽 진보정당의 효시인 독일 사민당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교훈을 던져준다. 첫째, 이 정당은 1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명을 바꾼 적이 없으며 지금도 전당대회에서 150년 전의 깃발을 그대로 사용한다. 핀란드의 교육개혁이 20년의 꾸준한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유명한 일인데, 이것은 정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정책의 실현에 이 정도 기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려준다. 역사가 없으면 정체성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이 정당은 마르크스와 라살의 이념을 따르던 두 그룹이 합쳐 만든 정당이다. 당연히 서로 다른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바로 강령이다. 강령은 정당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서로 다른 의견의 공통 부분이 목표에, 차이 부분이 수단에 주로 반영된다. 그래서 전자는 당의 정체성을, 후자는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들 두 가지는 더민주의 문제점을 그대로 알려준다. 먼저 역사이다. 150년은커녕 10년도 채 지속하지 못하는 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릴 정책 실현의 기회가 있겠는가? 둘째, 당 내부의 소그룹들이 의견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견이 없는데 정체성을 확인하는 강령 논의가 있을 리 없다.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는 고작 4~5년이고 정책의 실현에는 20년 이상 걸린다. 따라서 정체성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의 선거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정당이 인물 대신 강령으로 조직되고, 또한 역사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앞의 선거에만 매달려 당명 변경, 분당과 창당을 밥 먹듯 하는 정당에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모든 역사는 원년에서 시작하고 지금이 그 원년이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더민주가 정체성을 갖춘 진정한 수권정당이 되려는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