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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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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사상은 우리 헌법의 정신이다. 기본권이 바로 민권사상이다. 필자는 묵자, 허형, 안향, 정도전, 이황, 조식, 이이 그리고 실학파 이익, 정약용, 황현으로 '조선의 민권사상의 혈맥'이 흘러왔다고 생각한다.
◇묵자와 허형 그리고 안향 = 묵자는 BC 480~420(?) 사람이다. 이 세상에 남겨 놓은 핵심 사상은 겸애, 비공, 상현, 상동, 절용으로 요약된다. 묵자는 종교적 모습을 갖고 있지만, 종교가는 아니다. 그저 인문학과 과학기술에 정통한 정통 평민 성인이었다.
묵자는 서민고통 해소, 사회현실 개선, 무용한 천자정치에 경고, 서민 신앙을 토대로 평화사상을 도처에 전파하였다. 춘추말기와 전국시대 초기는 도저히 서민이 살 수 없는 시대였다. 묵자사상은 진나라 통일에 기여했고, 국가조직에 흡수되었다.
한비자는 법가사상을 발전시켰다. 한비자의 스승은 순자였다. 순자는 묵자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묵자는 민권의 저수지가 되어 곳곳에 흘러갔다.
원나라 유학자 허형(1209~1281)은 '노재지학'을 발전시켰다. 실천유학이었다. 고려 말에 안향(1243~1306)이 '노재지학'을 수용하였다. 국가개조를 위한 신사상이었다. 안향의 시대는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원나라에 항복한 시대였다. 친원 권문세가들이 득실했다. 왕실, 지배층, 불교세력이 유대한 부패한 사회였다. 안향은 교육을 통한 국가개조, 인재양성이 시급함을 자각했다.
◇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 혁명의 기운은 시대와 인물을 만들었다. 이성계(1335~1408)와 정도전(1342~1398)의 만남이었다. 고려의 폐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역성혁명을 시도하였다. 정도전은 토지개혁과 성리학을 토대로 한 신권중심의 유교 국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혁명의 또 다른 축이었던 이방원(1367~1422)은 왕권중심의 유교 국가를 지향했다. 결국 조선은 왕권중심의 과거로 회귀하고 말았다.
그러나 묵자와 허형, 안향과 정도전이 뿌려 놓은 민권사상은 남명(1501~1572), 퇴계(1501~1570), 율곡(1537~1584)으로 이어졌다. 남명은 출사를 거부하였고 민권사상을 경상좌도에 확산시켰다. 남명의 씨앗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발현되었다. 묵자사상의 부활이었다. 곽재우 등 대부분 의병장들이 남명학파들이었다. 묵자의 이론과 너무 유사했고, 묵자학파들의 행동과 너무 닮았다.
◇ 퇴계, 율곡, 성호의 민권사상 = 퇴계는 <성학십도>로, 율곡은 <성학집요>로 민권정치를 진언했다. 선비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필과 인재양성이었다. 집필의 힘은 자기수양과 도덕을 기반으로 한 성리학이었고, 그 지향점은 성군정치였다.
율곡은 200년 동안 병든 조선 왕조를 온몸을 던져 고치려고 노력한 선각자였다. 율곡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강조했다. 율곡은 신분 차별을 비판했다. 정도전이 토지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율곡은 사람문제에 정성을 쏟았다. 대공수미법, 10만 양병설, 서원향약과 해주향약은 경세제민사상이었다. 율곡의 현실개혁 사상은 실학파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의 진보사상은 율곡 이후 100년간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성호(1681~1763)에서 다시 부활했다. 서학이 중국과 조선을 덮친 시대였다. 성호의 사유는 진보사상을 모두 모은 것으로 붓, 문헌으로 기존 질서에 도전한 것이었다. 성호의 제자들은 실학파로 다시 성장했다. 대표적 인물이 다산(1762~1836)이었다.
◇ 다산, 매천의 민권사상 = 다산은 남명, 퇴계, 율곡, 성호의 지적 자양분을 먹고 자랐다. 서학을 만난 것이 운명이었다. 18년 유배는 다산을 500권의 저술가로 만들었다. 다산은 성리학과 천주학을 함께 사유했다. 묵자사상의 재등장이었다.
<다산비결>은 동학으로 이어졌고, 동학의 실패는 조선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이 멸망사를 기록한 사람이 매천(1855~1910)이었다. 그의 <매천야록>은 퇴계의 <성도십도>, 율곡의 <성학집요>, 이익의 <성호사설>, 다산의 <여유당전서>에 비견되었다. 민권사상이 깊이 배어 있었다. 매천도 '진보사상의 맥'을 잇고 있다. 진보사상(민권사상)은 은둔, 출사, 하향, 유배, 자살로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남겨 놓은 정신은 민권정신이었다. "백성이 위험하다"는 생각이었다.
조선 성리학에서 민권사상의 뿌리를 묵자에서 찾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러나 성군정치, 대동사회, 올바른 인재등용, 서민을 위한 정책, 절용과 조세, 은둔, 실천, 의병, 집필, 과학기술을 묵자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돕고, 교육하고, 재물을 나누자." 이것이 묵자의 정신이다. 오늘날 유럽 국가들의 국가철학과 유사하다.
마오쩌뚱(1893~1976)은 묵자를 '노동자였지만 공자보다 훌륭한 성인으로, 인문학과 과학기술에 정통한 평민 성인으로' 평했다.
연민 정신 없는 정치인, 왕조시대로 회귀
지금 우리는 민권의 뿌리를 알고, 그 이념을 구현하면서 우리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겸애사회, 비공사회, 상현사회, 대동사회, 절용사회다. 독일과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 같은 나라들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부모의 월급이 사교육 때문에 매월 강탈당하는 만성적 적자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엉망진창인 교육시스템 때문이다. 자녀 사교육비로 월 100만 원을 지출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승진을 위해 청와대까지 인맥을 찾고 있다. 공천을 받으려면 중앙당의 인물을 접촉해야 한다. 이것이 민권정치인가?
비판 상대를 민주주의 파괴범으로 몰고 있다. 국민의 이름으로 모멸과 고성을 지르는 정치구조다.
가정에서 절용을 할 수 없는 사회라면 서민이 살 수 없는 사회시스템이다.
묵자가 참지 못했던 정치들이다. 아직도 이방원류의 왕조 정치를 하고 있으니 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하겠는가.
헌법을 파괴하는 모멸사회, 외국인 노동자 차별, 새터민 차별, 핍박 받고 있는 현재의 북한 주민의 고통, 모든 직장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만약 율곡이 보았다면, 어떤 질책을 하였을까?
조선 500년을 이어온 민권사상, 일제 36년의 저항정신, 해방 후 50년의 민주화운동은 모두 묵가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민권사상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힘이다."(퇴계) "민중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민권사상이다."(다산)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