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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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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다. '30분 더 일하기 운동'이라는 것을 정부가 발의했다. 1986년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한 뒤 4년간 이어지다 1990년 다시 적자로 돌아선 것이 발단이었다. 경제에 적신호가 왔다고 판단한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경제가 어려우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얘기를 우리는 흔히 듣는다. 정부의 결정은 이런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정부에서도 얼마 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저성과자를 기업에서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얼핏 이것은 당연한 것인 양 생각된다. 왜냐하면 개미와 베짱이 우화가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일을 많이 하면 잘살 수 있는 것일까?
노동시간 적은 선진국, 임금은 높아
고용주와 노동자 수익 분배가 핵심
유럽 합의주의 vs 미국 승자독식 중
근로빈곤층 많은 한국의 선택은?
실제로 그런지 한번 확인해 보자. 2012년을 기준으로 독일 미국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각각 1397시간, 1790시간, 2163시간이었다. 시간당 임금은 각각 45달러, 35달러, 20달러였다.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일수록 시간당 임금이 더 높은 것이다. 세계 전체를 놓고 봐도 북유럽 국가들은 노동시간이 짧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들 나라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같은 해 노르웨이는 63달러, 스웨덴은 50달러였다. 일을 많이 하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적게 할수록 잘사는 것이다.
어찌된 영문일까? 자본주의라는 경제 속에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자본주의 이전 경제는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는 자급적 구조였다. 이 경제에서는 일을 많이 하면 그것이 곧바로 소비로 직결되어 잘살게 된다. 혼자 만들어 스스로 소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한 사람이 혼자 생산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생산에는 대부분 두 사람이 관여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고용해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동의 결과물도 두 사람이 나누어 갖는다. 택시기사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매일 벌어들인 수익을 사납금이라는 형태로 회사에 납부하고 나중에 그중 일부를 임금으로 돌려받는다. 그가 돌려받지 못하는 부분은 그를 고용한 사장의 몫이다.
자본주의에서 일을 많이 한다고 잘살게 되는 것이 아닌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을 많이 하면 부가 더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늘어난 부를 한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나누어 갖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한 사람이 많이 가져갈수록 다른 한 사람이 적게 가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위 양극화로 이들 두 사람의 경제는 대립해 있다. 결국 문제는 생산된 부를 두 사람이 고루 나누느냐 아니면 한 사람이 독차지하느냐다. 이는 곧 경제의 성격이 민주적인인가 독재적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위의 예에서 노동자가 일을 적게 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나라와 그 반대인 경우가 바로 그것을 설명해 준다. 독일은 두 사람이 고루 나누는 민주적 방식에 기울어 있고 미국은 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독재적 방식에 기울어 있는 것이다. 전자를 합의주의, 후자를 승자독식이라고 부른다. 빌 게이츠 같은 대부호가 미국에는 많은데 독일에는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한 사회가 이들 두 방식 가운데 어떤 방식에 기울어질 것인지는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만 많이 하자고 강조하는 대통령이 선출되는 나라에서는 일을 많이 하고도 가난한 현상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우리는 언제쯤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