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pg) | 김대경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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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세월호 사고 보도와 관련해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게 외압을 행사한 전화 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그 통화의 녹취록 내용은 언론보도의 자유와 책임을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필자로서는 낯이 화끈거려 차마 끝까지 청취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방송장악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며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고, 야당은 청문회를 개최해 추가적인 언론통제 정황을 밝히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적 비상시기에 방송에 협조 요청을 하는 것은 청와대 홍보수석의 통상적인 업무'라고 강변하며 당대표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30년 전 전두환 군사정권 때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시행된 언론통제를 다시 떠올려야 하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통해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1도 1사'의 일방적 방침에 따라 전국 언론사들을 통폐합하는 등 언론 통제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언론사 편집국에 중앙정보부 요원이 상주하면서 '보도지침'을 작성해 매일 특정 이슈에 대한 보도내용·방향까지 제시했다. 예를 들면, 1985년 10월 21일에는 '경상수지 계속 흑자라는 한국은행 발표를 1면 톱 뉴스로 다뤄라'는 지침이, 1986년 7월 27일에는 '탄광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이 하달되었다. 보도지침을 어긴 언론인들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보도지침이 세상에 알려진 후 전두환 정권은 국가기밀사항에 대해 언론에 협조 요청을 한 것이지 언론보도를 통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대응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권력의 대응논리가 어찌 이리도 유사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방송통제에 대한 세간의 의혹과 관련해 방송장악은 있을 수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며 일축해왔다. 그러나 이번 녹취록 파동은 보도통제가 단순히 일회성에 그친 게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권력의 핵심 인사가 노골적으로 방송보도에 대한 압력을 행사한 증거가 드러났고 이는 언론자유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발 후 1주일 동안 KBS는 이와 관련해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고 또 다른 공영방송인 MBC는 1건 보도에 그쳤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려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다. 하기야 녹취록에서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은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느냐"며 그동안의 부역을 스스럼없이 자백하고 있는 마당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나마 KBS의 젊은 기자들이 이러한 무(無)보도에 항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는 상황이 참담하기만 하다.
녹취록 파동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비서실장은 홍보수석의 통상적인 업무일 뿐이라고 두둔하지만, 한 번만 도와달라는 사람과 그동안 많이 도와줬지 않았느냐고 항변하는 사람, 이들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일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통상적 업무가 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현행 방송법 제4조 2항에는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즉 방송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방송편성 책임자의 자율성을 법률로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핵심참모의 전화를 통한 협조 요청은 공영방송에 대한 간섭으로 충분히 여겨질 수 있다.
흔히 권력과 언론의 바람직한 관계를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고 표현한다.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또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국가적인 재난위기 때 정부와 언론의 협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상호협력은 각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금도를 넘어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대전제 아래 작동되어야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은 입법·행정·사법부와 더불어 제4부로서 규범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는 주권자인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임받아 국가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감시견으로서 사명을 수행하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공존 또는 협력보다는 상시적인 견제를 통해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공익에 부합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