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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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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은 개별 자본가가 노동운동의 전임자를 해고할 수 있는 관계를 바꾸는 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산별노조의 전임자는 노동조합이 고용하고 그를 해고할 재량권은 노동조합이 갖는다.
2013년 고용노동부가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하면서 진행된 소송이 지난 5월 전교조의 패소로 판결났다. 이 판결로 전교조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큰 어려움을 안게 되었다. 전임자들의 해고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조합의 법적 지위는 무엇보다 조직의 대중화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전교조는 이미 지속적으로 조합원 수의 감소를 겪고 있는 상태이다. 2005년 약 9만명이던 조합원이 지난해에는 약 6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법외노조 판결에 대한 전교조의 대응은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2012년 이미 부정적인 판례를 남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교조는 플랜 비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플랜 비의 구상에서 먼저 짚어둘 점이 있다. 이번 사안은 초기업 노조를 인정한 1998년 노사정 합의에도 위배되고 무엇보다 1999년 전교조가 법적 지위를 얻은 이후 가만히 있다가 2010년 갑자기 딴지를 건 사건으로 정부의 무리한 노동탄압 의도를 명백히 보여준다. 그래서 그것의 부당성에 대항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다. 현실은 우리의 의지나 도덕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운동의 정당성이 현실에서 인정되는 사례는 항상 예외적인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노동운동은 사실 그 예외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도덕적 판단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일이다. 그것은 냉혹한 현실의 정치다. 마르크스가 일러준 유물론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를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이 사안의 빌미는 해고자가 전임자로 활동한 사실에 있다. 그런데 해고는 개별 자본가의 재량권에 속한다. 자본주의의 고용이 그 생산관계, 즉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본질적으로 생산관계를 바꾸기 위한 운동이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개별 자본가가 노동운동의 전임자를 해고할 수 있는 관계를 바꾸는 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업 단위를 넘어선 산별노조가 필요한 것이다. 산별노조의 전임자는 노동조합이 고용하고 그를 해고할 재량권은 노동조합이 갖는다. 개별 자본가는 노동조합의 전임자를 해고할 권한이 없고, 따라서 자본가와 마주하는 노동조합 전임자의 지위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래서 산별교섭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의 변혁이 교섭 의제로 다루어질 수 있다. 개별 자본가의 해고에 맞선 사회적 고용안전망, 개별 자본이 함부로 자행하는 노동자들 간의 차별을 규제하는 초기업 단위의 사회적 임금체계, 개별 자본가들의 경영권을 기업 외부에서 제한하는 공동결정제도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전교조는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조직이다. 문제가 된 사안도 바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포괄하는 산별노조의 조직 원칙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참에 아예 본격적인 산별노조로 도약할 수는 없을까? 전임자를 전교조가 직접 고용하고 이들을 조합원이 아니라 전임자 자격으로 각종 조합원의 권리를 부여하는 규약개정을 할 수는 없을까? 정부와 법원의 부당한 조처를 자신의 힘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이런 대응을 할 수는 없을까?
사실 이 문제는 전교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대폭 위축시킨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도 고용관계가 개별 자본가의 재량권에 묶여 있는 데에 핵심 문제가 있다. 이 문제도 노조가 전임자를 직접 고용하면 단번에 해결될 수 있다. 우리 노동운동이 최근에 처한 어려움 가운데 상당부분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직접 겨냥한 계급적 성격의 산별노조를 우리 노동운동이 만들지 못한 데에 있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계급적 사안이 점차 증가하는 현실에 대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노동운동이 변화시켜야 하는 사회제도는 “생명체의 발전과정”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명체는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고 나면 곧바로 다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할 노동운동의 유연성을 강조한 마르크스의 이야기다. 우리 노동운동이 지금 새겨보아야 할 교훈이 아닐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