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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제무역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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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제는 세계 어느 대도시보다 짧은 기간 동안 영고성쇠와 엇비슷한 궤적을 그리면서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고’의 끝자락과 ‘쇠’의 미끄럼틀 코앞까지 왔는데도 이를 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거리가 먼 총선공약으로 4대정당의 부산시당이 투표권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경제기초체력 최강에서 최약으로
타고난 자질로 인해 부산경제는 근 30년간 쉽게 번성하고 나라경제 융성의 기틀을 제공했으나 중화학공업이란 산업재편에서 배제되었고 첨단과학기술의 신산업이란 시대흐름을 타지 못해 전국 최고의 경제지표가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그럭저럭 먹고 사는 것은 부자 3대란 말처럼 전통·기존산업 및 바다와 잘 나가는 이웃도시들을 둔 덕이라 하겠다.
이것마저 언제까지 지탱해 줄 것인가. 이제라도 앞날의 먹고사는 일과 50대 이하의 인구감소를 막는 방책을 마련하는 데에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하는 근본정신으로 돌아가 ‘지난 30여 년간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남은 자산이라도 있으면 소중히 여겨 실용(實用)및 자강(自强)과 공덕(公德)이란 경제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먼저 지난날의 영화 ‘영(榮)’ 자의 시기이다. 해방, 분단, 6·25전쟁 등으로 극심한 물자난과 기아선상에 놓인 외지동포들을 받아들여 먹히고 입혀 이들이 훗날 산업화 · 민주화의 주역으로 살려낸 일이다. 이것을 누가 알아주든 말든 조국 대한민국이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이르는 데에 생명 줄을 건넸기에 부산은 정신적인 면에서 아주‘영화’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방 후 15년 동안 풍부한 원조물자의 배급지와 생활필수품의 생산지인 부산에만 오면 먹게 되었고 피난민들에게 문간방을 내주고 곤경에 처한 이웃을 보듬는 인정을 싹 트인 때도 있었다.
그 후 근 25년 동안 성할 ‘성(盛)’자의 시기이다. 1960년대 초까지 만성적인 물자부족으로 수입이 수출보다 10배 많았고 그 차이를 미국의 무상원조로 메꾸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금의 대량 유출로 이어져 금본위 제도가 흔들렸다. 그 일환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를 대폭 줄였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수입을 위한 외화벌이로 수출주도형 공업화의 길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마침 부산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공업기반과 사회간접자본이 있었기에 기계 몇 대와 농촌의 유휴노동력을 결합시켜 단순조립가공으로 합판, 의류봉제, 신발 등을 대량 생산해 수출하므로 부산의 1인당 소득이 전국 최고가 됐다. 일자리 창출기회가 넘쳐나 전국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가장 활기찬 젊은 도시, 경제기초체력이 전국최강이란 기록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대량수출로 얻은 외화는 그 후 중화학공업기반 건설에 큰 종자돈이 되었으니 부산은 스스로 번성(繁盛)하면서 나라의 융성(隆盛)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음은 1990년 이래 오늘까지 근 30년동안 마를 ‘고(枯)’자의 시기이다. 1970년대 중반 당시 국제분업체계에서 한국경공업이 더 이상의 비교우위를 유지 할수 없게 되자 정부가 중후장대한 중화학공업으로의 산업육성정책을 급속히 전환시킬 때 부산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더구나 1980년대 초 모든 자원들이 몰려드는 서울과 동렬로 정부가 부산을 성장억제적인 관리도시로 묶어놓아 신사업의 진입장벽이 쳐진 가운데 기존·전통산업들의 역외이전행진이 방치되고 이를 대체할 산업이 자리 잡지 못해 부산의 경제기초체력과 에너지원은 점차 말라 고갈(枯渴)되어 소위 선발성불이익(先發性不利益)현상이 나타났고 지금도 이런 궤적에서 벗어나는 반전의 큰 모멘텀을 갖지 못하고 있다.
시대흐름에 비켜난 부산산업구조
이런 짧은 기간 남을 위한 ‘영’과 자신과 나라를 위한 ‘성’을 경험한 부산시민들은 1990년대 이후 밖으로는 동아시아의 국제분업체계변화 및 세계화란 지각변동과 안으로는 수도권 경제집중화의 심화, 여타지역의 추격, 과학기술 패턴의 혁신 등을 제대로 읽어내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물론 20여 년 전 시민사회가 나서 삼성자동차를 유치하여 많이 보탰지만 그후 유치릴레이가 없어 제조업의 생산력비중은 여전히 바닥수준에 머물고 있다. 돌이켜보면 중화학공업의 배제 및 노동집약적인 주력산업이 해외로 이전할 때 너무 빨리 제조업에서 손을 때고 도시형산업인 생산자서비스로 지역산업 정책방향을 틀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실책이 되었다.
생산자 서비스 중 대표적인 금융산업을 입지시키면 법률, 회계, 정보업 등이 뒤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생산자서비스시장의 최대수요층인 중견이상 대부분의 기업본사들이 서울에 있고 그곳의 생산자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생산자서비스산업이 지방에 뿌리내리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일자리 창출력은 아직까지는 제한적인데 이런 실정을 면밀히 살피고 당시정부와 부산이 금융을 지역특화산업으로 지정했느냐는 의문이다.
부산경제력급락의 주된 요인은 과학기술패턴변화에 따른 신산업흐름이란 메인스트림에 편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1990년대부터 역대정부는 지역특성에 따라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정책자원을 지원했고 해당지역 차원에서도 지역에너지를 투입해 왔지만 지정된 산업의 지역경제파급효과를 제대로 살폈는지, 그리고 지역의 상징성이나 토착정서와 경제의 실질과는 다를 수 있는데도 분위기에 끌려 정부의 도식적 관행에 발의도 못해보고 덜렁 받아들이지는 않았는가. 바둑에서 손 따라 두면 선수를 빼앗겨지는 수가 많다. 정작 중요한 일자리 관점에서 부산이 주도적 이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 동안의 여러 사레중 대표적인 것이 파생금융과 항만물류 및 영화영상 산업이다. 파생금융은 부산이 서울을 제치고 한국선물거래소(1999년)와 한국거래소 (2005년)을 유치하여 서울과는 독자적인 금융산업을 부산에 일으키기 위한 대형프로젝트이고, 항만물류·해양은 지역을 대표하는 최대산업이며, 영화영상은 지역민의 선호와 문화에 걸 맞는 산업이다.
그렇지만 이들 지역특화산업들이 얼마만큼의 일자리 수요를 흡수하고 계속적으로 창출해왔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말로 돌팔매를 맞을지 모르나 필히 따져야 하는 이유는 기회비용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더욱 민주사회에서 형평성이 국가정책자원배분의 기준이 되고 있어서 어떤 것 하나 얻으면 다른 것을 하나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정부가 부산특화산업을 지정할 때 좋은 일자리 창출의 기준으로 비용·편익 및 투입·산출이란 기본분석을 충분히 거쳤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부산시 차원에서라도 경과된 일정기간 동안 지역기여도 평가로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분야는 정부에 발의하여 계속된 자원투입을 막았어야 시대 흐름에 맞는 신산업의 진입길이 열린다.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파생금융이다. 지난 17년간 부산이 발의하고 견인하여 이루어진 정부정책자원의 투입이 집중된 곳이 이 분야 였는데 공교롭게도 이 기간 동안 정부는 각 지역의 기존산업에다가 첨단기술의 신산업을 더하여 지역별로 전략산업을 지정했다. 하지만 부산은 일찍이 파생금융도시 프로젝트로 정책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매번 첨단기술의 신산업입지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은 가장 뼈아픈 일로서 고급일자리창출과 생산자서비스의 파급효과가 큰 금융클러스터에 별 역할 못하는 KRX로 인해 첨단기술 신산업의 부산입지를 희생시킨 막대한 기회비용을 부산시민들이 떠안는 결과가 되었다.
다음으로 현재 부산은 350만 인구를 부양시킬 만큼의 경제기초체력과 일자리 흡수능력이 있는가이다. 부산인구는 파리, 로마, 시카고, 오사카 등 보다 많은 대도시이므로 다양한 업종에서 일자리가 생성될 수 있는 창업생태계 조성과 기업하기 좋은 토양 및 환경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부산은 한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데 올인하여 경제부진을 한방에 끝내려는 일들이 왕왕 있었지만 실속 있는 일자리를 위한 제도 및 관행개선에 대한 기업 및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과 지역에너지를 모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제언 : 실용, 자강, 공덕의 경제 정신으로
이러한 부산경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현재 기준에서 지난 일을 본 것이므로 당시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성찰적 관점에서 지역산업의 진행궤적이 시대적 트랜드와 국가산업정책변화의 중핵에 맞추어져 완급이 조정되고 수정되어야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어야 했다. 불과 10~20년 사이에 그렇게 잘나가던 세계적 기업과 이를 품은 도시들이 기존제품과 산업에 올인하므로 명멸했듯이 오늘 세계경제의 트랜드는 매우 거세고 빠르게 움직여 이 대열에서 벗어나면 발전은 고사하고 유지 보수조차도 어려운 것이 기업뿐만 아니라 도시경제 및 국가경제 등이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불확실성의 격량 속에 부산경제를 지켜내고 더 나아질려면 관념과 도식에 메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팩트와 실질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사실 부산사람은 갈 길이 정해지면 끝까지 밀어 붙이는 화끈한 기질로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존속 할 수 없으며, 이를 품은 부산 공동체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당초 기대에 크게 벗어났거나 과대포장으로 실속이 없는 주요전략산업은 빨리 정비해야 시대흐름에 맞는 신산업이 들어온다. 기존전략산업이 오래 되다 보니 어떤 네트워크가 생겨 애초의 목표에서 멀어졌는데도 계속 지지하는 관성이 계속되는 경로 의존성에 빠지면 결과적으로 지역의 자원낭비다.
아직 쇠락하지는 않았고 타고난 자연조건과 제2의 도시라는 정치·경제적 위치, 지난날의 ‘영’과 ‘성’ 시절의 기백이 아직은 배여 있고 ‘고’의 시기에 실패경험이 있으니 이를 잘 역어내면 희망을 걸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최우선과제는 좋은 일자리 창출이므로 실용이 중심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25년전 미국 오스틴 시에 머물 때 불과 10~20명 고용창출 하는 상점의 오픈행사마다 시장을 비롯한 지역유지가 참석하고,브라스밴드 연주로 환영하고 언론이 크게 다루는 것이 색달라 보였다. 이런 곳이 몇 년 후 포춘지에 미국에서 제일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고 기업이 몰려들어 번성했다.그때 우리는 어떠했나? 공직자, 지도층, 언론 등이 실용에 눈과 마음이 떠나 있으면 젊은이는 떠나게 되고 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다음 자강이다. 경제력은 먹고사는 일을 넘어 삶의 질 및 안위와 문화 예술, 지적수준, 민주시민의 소양과 정신을 자라나게 한다. 부산의 내구력을 회복하기위해서 스스로 경제를 일으키는 자강의 정신이 필요하다.
끝으로 공덕이다. 지난 20여 년간 지역공동체를 이롭게 하려는 시민참여와 공직자의 역할정체성이 잘 발현되지 않아서 경제 하고자하는 의지가 낮아져 지역경제 활성화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직사회는 물론 시민사회도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공덕이란 경제정신이 뒷받침 될 때 부산은 다시‘ 영,과 ’성‘의 시기를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