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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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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부터 잔혹극의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의 족적을 쫓고 있다. 그는 프랑스 지중해의 항도 마르세이유 출신으로 스무살 무렵에 파리로 상경하여 연극과 영화판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온 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사가 펴내는 문예지 ‘NRF’(La Nouvelle Revue Francaise)에 투고했다가 게재 거부 편지를 받았다. 문학 강국인 프랑스는 한국처럼 신춘문예 제도나 수십 개의 문학공모가 활발하게 작동되지 않는 대신, 출판사에서 연중 작품을 투고 받는다. 출판사는 투고된 작품을 정기적으로 읽고 선별하는 선정위원들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앙드레 지드나 미셸 투르니에, 파스칼 키냐르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신인 발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앙토냉 아르토는 연극인이자 영화배우, 비평가로 활동했지만, 시인으로는 문단의 공식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NRF’에 시를 투고하는 한편, 소책자 형식으로 소량 자비 출판해서 스스로 시인임을 세상에 드러냈는데, 문단도 독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르토는 무성영화 시대였던 당시 주목받는 젊은 배우였고, 앙드레 브르통과 함께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작성할 정도로 파리 문학예술계에서 그는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시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수 없었고, 그것이 ‘NRF’에 투고 행위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는 끝내 시인으로 정식 등단을 하지는 못했지만, 투고한 시 중 한편인 ‘고함’은 ‘NRF’에 실렸다. 그런데 시(詩)란이 아닌, 편집장이 예외적으로 지면을 마련한 ‘편지’ 속에 액자처럼 끼워진 형국이었다.
사연인 즉슨 이러하다. ‘NRF’의 편집장 자크 리비에르는 투고자 아르토에게 그의 시가 게재될 수 없는 이유를 편지로 보냈다. 우리의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에서는 당선작과 그 작품과 최종적으로 당락을 겨룬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심사평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힐 뿐 투고자들에게 낙선 이유를 보내주지는 않는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아르토의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자크 리비에르가 편지에 쓴 게재 불가 편지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11통의 서신 왕래가 이루어졌고, 그중 한 편이 ‘NRF’에 실리는 희귀한 일이 벌어졌다.
자크 리비에르가 아르토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내용은 게재 불가지만, 시의 작가인 아르토를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아르토는 자신의 시를 해명하는 장문의 답장을 보내면서 게재 불가 사유를 청했고, 그 결과 자크 리비에르로부터 자신의 시가 게재되기에는 “서투르고, 당혹스러울 만큼 이상한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평을 들었다. 자크 리비에르는 아르토를 만난 지 1년 후에 사망하고, 새로운 편집장 장 폴랑이 아르토를 상대하는데, 전임자와는 달리 그는 아르토의 비상한 언어 파편들을 열렬하게 경청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르토가 시인으로 평가받은 것은 아니다.
수잔 손택이 고백한 것처럼, “어떤 작가들은 읽히지 않기 때문에, 본래 읽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학적, 지적 고전이 된다.”(수잔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아르토는 선천적 매독증과 정신분열증, 그리고 남서증을 앓았다. 남서증이란 과도하게 편지질을 해대는 것을 말한다. 끝내 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탓인지 그는 죽는 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렘브란트와 나혜석이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삶을 이어갔듯이 아르토는 편지를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증명해낸 셈이다.
아르토의 정신과 육체는 전기충격과 안정제용 마약(아편) 복용으로 해체되고,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그의 극도로 분열된 의식과 파편적인 언어를 질서정연하게 재구성하여 내놓은 철학자는 들뢰즈이다. 그의 대표적인 철학 주제인 노마디즘의 기관 없는 육체론은 바로 아르토의 파편적인 글조각들, 편지에서 비롯된다.
4월이면 신춘문예로 세상에 나온 신인 작가들이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야생의 감각과 에너지를 품은 그들의 문장을 읽으면서 아르토를 떠올리는 것은 봄날의 환각 때문만은 아니다. 고통과 황홀이 공존하는 그들의 앞길에 사랑과 인내, 축복이 있을진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