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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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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심사 차 광주에 다녀온 뒤, 새해 초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리산을 넘어 광주에 다녀온 기운이 파리로 이어졌다. 광주일보 14층에서 내려다본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그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무등산의 운치가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광주에 하루 더 머물며 새로이 개관한 아시아문화전당을 탐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에 선보인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 정작 관계자들도 시민들도 정비와 적응 단계를 거쳐야 제대로 기능과 가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기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지리산을 넘어 부산으로 돌아왔다. 대신 유사 기관인 영화의 전당(부산)과 퐁피두센터(파리)를 잇달아 방문했다.
영화의 전당과 퐁피두센터는 서울, 부산, 파리를 오가는 내 삶의 궤적에서 가장 친숙한 ‘생활’ 영역이다. 우선 영화의 전당의 경우, 내력이 청춘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프랑스문화원의 시네 클럽에 드나들 때부터, 영화는 나에게 한 편의 문학작품, 한 권의 소설책과 같은 의미였다. 서울 경복궁 맞은 편 사간동에 위치했던 프랑스문화원의 영화감상실은 세계적인 흐름의 문화예술 자료가 희귀했던 시절, 불문학도였던 나를 비롯 한국의 시네키즈(영화매니아)들에게 오아시스이자 젖줄 역할을 담당했다.
내가 예술문화복합 공간인 퐁피두센터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서울의 프랑스문화원에서였다. 당시 핫 이슈가 막 개관한 루브르 피라미드였고, 그보다 십년 먼저 선보인 퐁피두센터와 함께 새로운 도전의 건축물들이 도시 역사와 미관, 도시인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현지 기사들을 탐독했다. 개인 소유물이라고 하더라도 기왓장 하나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는 고도(古都) 파리 한복판에 666개의 유리를 철골에 끼워 맞춘 이오멩페이의 루브르 피라미드와 송수관들을 외부로 노출시킨 렌조 피아노의 퐁피두센터가 주는 이물감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을 넘어 파괴적이라 할 정도였다.
파리 퐁피두센터의 정식 명칭은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Pompidou)이다. 이곳의 특징은 네 가지(도서관, 미술관, 음악음향기록보관, 창작) 기능(function)을 융합시킨 공간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기능’적인 측면이다. 기능이란 우리 몸의 연골처럼 고유한 장르가 얼마나 원활하게 연계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관광객으로, 또는 유학생으로 파리에 첫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퐁피두센터의 위치와 형상, 콘텐츠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취향과 본업에 따라 도서관이든 영화아카데미든, 창작관이든 집중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퐁피두센터를 뉴욕의 모마나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처럼 세계 현대 미술의 메카로 인식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곳이 융합 공간이라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파리에서 유학한 한국인 상당수가, 길고 고된 석박사 논문을 이곳 도서관에서 완성한 경우가 많을 정도로, 장서량이 방대하고, 학생이든 관광객이든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개방성과 이용도가 탁월하다. 현재 내가 파리에 단기로 체류하는 경우에도 미술관보다 더 오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이 도서관이다.
파리 보부르 광장에서 빨강 파랑 하양의 트러스(뼈대)가 두드러진 퐁피두센터를 바라보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를 생각한다.
개관한 지 두 달이 지났음에도 일부러 정보를 찾아보지 않으면 광주 지역 이외의 어디에서도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숭고한 정신이 깃든 최고의 공간을 마련한 만큼 만인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퐁피두센터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을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주 지역만의 문화예술기관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국내외 전문가의 개방적인 참여와 운용이 관건이다. 아시아문화예술교류의 허브라는 구호에 걸맞게 사방에서 발길이 쏠리고, 원활한 혈류를 형성할 수 있도록 충격적인 도전과 유쾌한 창조의 기능을 기대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