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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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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에밀 아자르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 이민자이다. 그는 열네살 때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 남부 지중해안의 니스에 정착했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알려진 니스는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형학적으로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흘러온 이민자들과 역사적으로는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형성된 이민자들의 혼종 공간이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이미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소설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의 가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로맹 가리 역시 가명이고, 에밀 아자르라는 또다른 가명 이외에도 몇 개 더 있다는 점이다. 에밀 아자르 또는 로맹 가리의 본명은 로만 카체브(Roman Kacew), 두 개의 가명으로 두 번의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새로운 평가를 희구하는 족속들이다. 에밀 아자르 또는 로맹 가리는 그러한 작가의 속성을 광적으로 표출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명에 대한 집착은 홀어머니 슬하의 이민자 출신 소년의 감수성이 프랑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긴장감과 정통 프랑스어 구사에 대한 강박이 작용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생(生)을 건다는 것,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 허무의 심연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모라는 소년의 눈으로 펼쳐지는 ‘자기 앞의 생’의 무대는 파리 북동쪽 20구 벨 빌(Belle Ville)이라는 동네이다. 11월 13일 동시다발적 테러가 가해진 파리 10구, 11구와 이웃해 있으며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벨빌의 뜻은 ‘아름다운 동네’이다. 나는 여섯 살 아이를 데리고 모모가 살았던 이 벨빌 근처의 신축 아파트에 잠깐 산 적이 있었다. 그후 에디트피아트 박물관이나, 피아프와 프루스트와 발자크와 쇼팽 등이 묻혀 있는 페르라셰즈 묘지, 레퓌블리크 광장 뒤편으로 흐르는 생마르탱 운하에 위치한 소설 무대 북호텔을 방문하기 위해서가 아닌 경우에는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몇 차례 경험한 벨빌의 허름하고 소외된 분위기가 내 마음을 한없이 위축시킨 이유가 컸다.
프랑스가 관용(톨레랑스, Tolerance)의 태도와 정신을 지침으로 삼아온 것은 구성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들과 이방인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20세기 현대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혼혈 이민자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앞에 소개한 에밀 아자르 또는 로맹 가리는 러시아계 유대인이고, 1960, 70년대 프랑스 문단의 새로운 물결로 떠올랐던 조르주 페렉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 출신이다. 그는 벨빌의 고모네에 맡겨져 성장했다.
로맹 가리와 조르주 페렉이 이민자 출신의 작가라면,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패트릭 모디아노는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파리에서 자란 혼혈 프랑스인이고,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와 알베르 카뮈도 혼혈 프랑스인이다. 르 클레지오는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니스에서 자랐고,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스페인인 어머니 사이에 알제리에서 태어난 피에-누아르(북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 태생 프랑스인)이다.
이들 이민자와 혼혈 프랑스인 외에, 이방인의 계보도 있다. 파리는 세계 이방인의 수도라 부를 만큼, 도심의 대형 공동묘지들에는 파리에 귀화해 작품 활동을 하다가 영원히 파리에 묻힌 이방인들이 많다. 아일랜드 출신 부조리극작가 베케트와 루마니아 출신 이오네스코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혀 있고, 뉴요커 수잔 손택은 유언에 따라 사후 그곳의 일원이 되었다. 귀화한 이방인 중 생존 작가로 밀란 쿤데라가 대표적이다.
파리가 이방인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것은, 경계를 넘나들며 숨 쉬기 자유로운 곳이라는 뜻이다. 2015년 1월과 11월, 파리는 거듭되는 무자비한 테러로 피를 흘리고 있다. 파리지엥들은 충격과 분노, 슬픔과 공포를 가슴에 묻고 한 사람 한 사람 총 대신 꽃을 들고 처연히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것만이 이념, 종교, 민족 간의 뒤틀린 복수와 광기, 테러를 응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이.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
